살아가는 일상

네가 와서 좋다 하니 눈치를 받는다.

by 데이지

모두 잠든 밤 소리 없이 뾰족 지붕에도 나뭇가지에도 동백꽃 잎에도 눈꽃을 피우느라 너는 힘들었는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잠이 들었나 보다.

그 황홀함에 홀려 혼잡한 출근길이 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평온한 아침이 좋기만 하다.


밤새 네가 무릎을 덥을 만큼 쌓이면 아버지는 새벽부터 마당에서 학교 앞까지 길을 만들어 주셨지.

커다란 도화지 같은 너에게 수많은 발자국을 찍으며 뒹굴기를 좋아했어.

너를 밟으면 뽀드득뽀드득, 어머니가 사다 주신 빨간 털장화를 신을 수 있어서 설렜지.

할머니는 마당까지 쌓인 너를 핑계로 마루까지 따뜻한 세숫물을 떠다 주셨고

넌 그 물로 요술을 부린 듯 멋진 얼음성을 만들었지.


오빠가 따준 높은 처마의 굵고 커다란 고드름은 항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고

네 위로 비료포대에 볏짚을 넣어 만든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 기분은 환상적이었지.

네가 오는 날이면 하나 둘 모여 눈싸움을 하던 학교 운동장은 우리들의 발자국으로 점령당했지.

하지만 책 읽는 소녀의 책과 세종대왕의 책 위에는 늘 소복하게 그대로 두었어.

논바닥 위 너를 쓸고 오빠가 만든 썰매를 탈 때도 신났지.

추위에 꼬챙이를 잡은 손이 꽁꽁 얼면 주머니에 넣고 오빠에게 설매를 밀어달라고 조르기도 했지.

그러면 오빠는 귀찮게 한다면서도 힘껏 밀어주었어.

너를 유난히 좋아하던 백구와 천방지축 뛰어노느라 장갑과 장화는 늘 젖어 손발이 꽁꽁 얼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아궁이 앞에서 언 손을 비벼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좋았지.


해 질 녘까지 너와 노는 동생을 찾으러 나왔던 오빠는 기다리다 함께 놀아줬고

밥을 짓고 나온 어머니에게 붙들려 혼이 나고서야 우리의 놀이가 끝났지.

종일 밖에서 놀고 나면 찬바람에 콧물이 줄줄 흐르고 볼은 터서 벌겋게 달아오르지.

그러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든 알싸한 생강차를 마셔야 했고 아끼시는 어머니의 영양크림은 푹푹 줄곤 했지.

너무 열심히 놀아서 밤새 시름시름 앓다가도

아침이면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 너랑 놀았어.

가끔은 밤새 열이나 어머니가 내 곁을 지키며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셨지만

이 모든 것이 너를 만나 좋기만 했던 내 어린 시절이야.

기억나지.


네가 와서 이렇게 좋았었는데 지금은 남편과 딸의 출근길을 걱정하며 도로가 미끄럽지는 않을지,

차가 막혀 지각하지는 않을지, 언덕배기에서 미끄러져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걱정부터 앞선다.

차가 있어 편리함을 준 대신 예전엔 없었을 걱정을 하게 만드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속절없이 마냥 눈이 와서 좋아하니 여기저기서 눈총이 따갑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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