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가 주는 일상
친구에게 여행을 온다는 연락이 왔다.
공항이 아니고 제주항으로 도착하는 친구에게 일정을 물으며 그날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톡을 보냈다.
육지에서 지인이 오면 의례 회를 준비한다.
점심이면 간단하게 초밥으로 저녁이면 도민 맛집에서 제철 회를 먹는다. 그러다 보니 공항 근처나 서귀포 맛집 리스트는 필수다.
12시경에 도착한다는 친구에게 초밥집을 공유해 줬더니 회는 저녁에 먹을 예정이어서 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회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순간 당황했다.
'탕이라면 무슨 탕을 말하는 걸까?'
다시 톡을 보냈다.
'몸국이나 고사리육개장?'
제주에 온 지 8년이 된 나도 몸국은 말로만 들었고 고사리 육개장은 딱 한 번 먹어봤다.
먹어본 적도 없으니 아는 곳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사리 육개장은 'ㅇㅇ해장국'이 맛있다고 하면서 한 시간 웨이팅을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만에 오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한 시간 웨이팅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한다고 해도 그날 예정된 일정이 있어서 친구 도착시간에 맞추기도 빠듯한 상황이었다. 아마 일정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해장국 집을 찾아 친구에게 이곳도 나름 유명하다고 톡을 보내 약속을 잡았다.
친구가 오기로 한 날 갑자기 강풍이 불었다.
다행히 배가 결항될 정도는 아니어서 제시간에 출항했다고 한다.
일정을 끝내 놓고 만나기로 한 식당도 웨이팅을 해야 할지 몰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30분전에 도착했다. 식당 안은 웨이팅이 길어야 10분 이내였고 다행이다 싶어 마음을 놓고 있는데 친구에게 다시 톡이 왔다.
강풍으로 40분 정도 더 소요된다고 한다.
친구가 오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한 시간은 족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해장국으로 유명하다는 'ㅇㅇ해장국'에서 기다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뀐 상황에 맞춰 변수를 감안한 판단을 했다.
'맛집 ㅇㅇ해장국으로 와. 먼저 가서 웨이팅 하고 있을게'
친구에게 톡을 보내고 'ㅇㅇ해장국'으로 갔다.
도착하고 캐치테이블 접수를 했더니 대기 41번이다. 직원 말로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느긋하게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어반을 하면서 기다렸다. 예전엔 한 시간을 기다리려면 짜증이 났을 테지만 제주 살면서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나름 터득한 덕분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웨이팅은 계속되고 친구부부가 여름이와 도착했다. 여름이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고 배를 타고 왔다고 한다.
여름이는 친구의 막내아들인 애완견이다. 함께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고 나서야 점심을 먹었다.
직원이 예상한 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나서야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식사시간은 너무 짧아 아쉬웠다.
고사리육개장과 녹두전으로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차 안에서 기다려준 여름이와 용연구름다리를 걸었다.
산책을 하면서 친구부부가 너무 맛있어서 올 때마다 생각날 것 같다는 말에 한 시간 사십 분의 기다림이 헛수고가 되지 않아 내심 만족했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를 위한 2시간여의 기다림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몇 년에 한 번 오는 친구이기에 명분이 생긴 것이고, 강풍의 변수가 아니었다면 웨이팅 할 의지도 없었다.
해장국 한 그릇을 위한 한 시간의 기다림은 불필요한 시간낭비다.
어찌 되었던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늦어진 배편 때문에 그 시간만큼 웨이팅 할 생각이 들었고 기다린 만큼 친구가 맛있게 먹고 고마워했으니 헛수고는 아니었다.
상황이란 것은 미리 준비를 해도 항상 변수가 생긴다.
대비하는 만큼 변수가 최소한으로 줄겠지만 항상 준비한 만큼 변수에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처럼 바람이란 변수로 시작된 웨이팅이 친구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나 또한 오랜만에 찾아준 친구를 잘 대접했으니 충분하다.
아마 바람이란 변수가 없었더라면 처음 약속했던 곳에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고, 친구는 이번 여행에 해장국 맛집을 못 들린 게 두고두고 미련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다렸다 먹여 보낼 걸 하는 후회가 됐을지도 모르고.
바람이란 예상치 못한 이 날의 변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에서 변수는 존재한다.
예상을 하던 못했든 간에 그 상황에 맞는 판단과 선택이 있다면 변수는 일상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변수에 대한 판단과 선택이 항상 옳고 좋은 일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일상이 살아볼 만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