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머니로부터*

백설기와 수수팥단지

by 데이지

가을 추수가 시작되었다. 노랗게 물든 들판이 바람결에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망망대해에서 파도가 일렁이듯 잔잔하게 황금물결을 이룬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그락 사그락 바람에 볏잎이 부딪쳐 나는 청량한 소리가 좋다.

더운 여름날 여물기 시작하는 볏알을 지키기 위해 참새를 쫓느라 날마다 깡통을 두드리며 달렸던 논두렁엔 듬성듬성 심어 놓은 콩이 익어가고 있다.


엄마는 논두렁의 콩을 거둬들이며 가을걷이를 시작하신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친정에 가면, 엄마가 따로 챙겨주시던 것들이 있었다. 두 딸들 생일 때 쓰라고 맵쌀가루와 수수가루, 팥이었다. 맵쌀가루는 백설기를 쪄주고, 수수가루는 수수팥단지를 만들어 주라고 하시며, 너희들도 열 살까지 해줘서 무탈하게 컸으니 딸의 딸에게도 열 살까지 꼭 챙겨 주라고 하신다.

엄마의 보따리를 받아 들고 어떻게 백설기를 찌는지, 수수팥단지는 어떻게 만들며, 팥은 얼마나 삶아서 고물을 만드는지 세세히 묻고 물어서 집에 돌아온다. 요즘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양하게 방법은 물론이고 지방특색에 맞춘 방식들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그때는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었다.

생일에 맞춰 주신 것이 아니니 머릿속으로 기억만 하다가 아이들 생일 때가 되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백설기는 어떻게 쪄야 해?"

"맵쌀가루는 간이 된 거다 그러니 따로 설탕이나 소금은 넣지 말고 체에 한번 내려봐. 가루에 물기가 너무 없어도 떡이 설익으니 손으로 뭉쳤을 때 살짝 뭉쳐져야 해. 그리고 백설기를 찔 때 찜기 바닥에 면포를 깔고 김이 빠져나가지 않게 찜통을 잘 맞춰 한다."

찜통이 없어 케이크 크기만 한 채망을 사서 바닥에 면포를 깔고 냄비 위에 올렸다. 어떻게 해야 김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하다, 예전 어머니가 시루에 떡을 찌실 때 하셨던 대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찜통 이음새에 두르며 꾹꾹 눌러 김 막음을 했다.

"엄마, 수수팥단지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지?"

"수수가루를 반죽할 때는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해야 반죽이 뭉쳐져. 반죽이 끝나면 잘 치대고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뜨거운 물에 넣고 익으면 떠오르니, 그때 체로 건져서 뜨거울 때 고물에 버무리면 된다. 쉽지! 어려울 것 없어. 수수경단은 익으면 부풀어 커지니 애기들 한 입에 먹기 좋게 작게 만들어라."

하시며 쉽다고 술술 말씀해 주시지만, 정작 듣고 있는 나는 왜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지.

"엄마, 얼마나 작게 말 들어야 해? 얼마나 커지는 거야?"

"그건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어느 정도 크기여야 적당할까. 수수가루를 익반죽 하고 동그랗게 경단을 만드는 과정은 밀가루 반죽하듯 물조절을 하며 질면 수수가루를 더 넣어가며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팥은 어떻게 삶아?"

"팥고물은 팥을 하룻밤 불려 소금을 한 꼬집 넣고 푹 삶지. 팥 알을 손으로 꾹 눌러보고 잘 부서지면 고슬고슬하게 뜸을 들여 분가루가 나올 때 절구에 빻아라."

"엄마, 팥은 얼마나 삶아야 되는 거야?"

"한 시간은 족히 삶아야 되니 물은 충분히 넣고 삶아야지."

"엄마, 팥을 삶아 절구에 빻았는데 너무 질퍽해 고물로 쓸 수가 없어 어떻게 해?"

"그러게 잘 삶아야지. 냄비에 넣고 약한 불에서 콩 볶듯이 주걱으로 저어주며 수분을 날리면 좀 나아질 거야."

말이 쉽지 팥을 삶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작은 알갱이가 어찌나 단단한지 불린다고 불려도 한 참을 삶아야 했고 설익거나 질거나 알맞게 가 참 어려웠다.

"엄마, 백설기는 익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젓가락으로 찔러봐서 젓가락에 쌀가루가 묻어나지 않으면 된 거다."

어머니 말씀대로 백설기가 익었는지 확인하느라 젓가락으로 콕콕 찌르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 투성이었고 생긴 구멍에 생일 초를 끼워 막아보기도 했다. 또 한쪽은 설익은 상태로 생일 상차림만 끝내고 잘라 다시 쪄 먹었던 적도 있었다. 어설퍼도 몇 번을 물어보고 반복하니 익숙해지게 된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맵쌀가루와 수수가루로 아이들 생일상엔 케이크 대신 백설기에 생일초를 켜줬고, 팥고물을 묻힌 수수팥단지도 하나씩 먹이며 잔병치레 없이 잘 자라주길 빌었다.

덕분에 백설기와 수수팥단지를 먹고 자란 딸들은 잘 커 줬고, 수수팥단지에 팥고물 보다 카스텔라 고물을 묻힌 경단이 더 맛있었다는 기억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수수팥단지는 맛보다는 팥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해서 생일 때 만들어 준 것이고 호기심에 한 두 개나 먹었으려나, 자꾸 생일떡이 남으니 팥고물을 입힌 수수팥단지는 한 접시만 만들고 나머지는 카스텔라 고물을 만들어 달달한 수수경단을 만들어 준걸 기억하고 있구나!

수수팥단지든 수수경단이든 먹고 큰 병치레 없이 무탈하게 한 해, 한 해 잘 커서 고맙고 내가 클 때 정성껏 생일떡을 쪄 주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딸들에게 전해졌으면 된 것이다.


나의 딸들에게도 어머니에게서 들은 삶의 지혜와 방법들을 알려줄 수 있을까? 시집갈 생각이 없는 큰 딸은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때 보다 나이가 더 많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딸보다 어렸지만 어머니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까지 많은 것들을 받았다. 이제 하나 둘 기억해 두었다가 누군가에게 나눌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머니가 더 그립고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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