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을 무사히 살아남은 자만이 노인이 된다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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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나이가 적지 않구나, 라는 감상이 종종 들고 있다.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강남대로 12차선 횡단보도를 7초 안에 뛸 정도로 팔팔하다.


나이 듦의 체감은 계절의 변화와 비슷하다.

나는 그대로인 거 같은데 주변의 온도와, 날씨와, 풍경이 변해간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활기 넘치던 초여름은 지나가고 눈 이불이 조용히 덮인 한겨울이 와 있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사진을 받았다. 올해 초에 잠깐 뵙고, 코로나가 심해지며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튀어나온 작은 못 하나에도 살얼음판처럼 조심해야 하는 나이가 되셨다.


시간은 성실하고 그래서 냉정하다.

몰래 자리에서 빠져나가 밥값을 결제하고 온 손녀딸의 등을 강하게 후려치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 사진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걷는 것도 힘들 만큼 아픈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자주 움직여서 병원에 가야 한다. 할머니는 주로 이모나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가신다. 그러나 이모와 엄마도 일이 있다 보니, 안타깝게도 항상 곁에서 할머니를 돌봐드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이것도 운이 좋은 편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OECD는 한국을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며, 20년 뒤에는 인구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OECD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 1위 국가다. 통계로 보면 65세 이상 노인 둘 중 한 명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치료받지 못하는 노인들 중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그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의료비용과 돌봄비용은 노인들의 지출 항목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65세 이상 노인 응답자들은 보건의료비에는 10만 1천 원, 간병돌봄비에는 44만 원을 지출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도 있었다.

도시와 멀어질수록 교통불편은 심각해진다. 지방에서 거동불편으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의 비율은 도시에 비해 3배나 많다.


만약 우리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노인이라면 동거인이 있는 노인에 비해 치료받지 못하는 비율이 2배가량 높아진다.

병원 치료는 진단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회복 상황을 살피고 재활치료까지 진행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은 자연적으로 돌봄에서도 사각지대에 위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 중 16.5%에 해당한다. 그리고 증가 추세는 매해 가팔라지고 있다.


온전히 개인에게 안정된 노후 생활을 맡기기에는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사회가 나서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은 노인들의 치료, 돌봄, 식생활 분야의 삶의 질 개선방안을 담고 있다.


먼저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직접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가 의사 지시서에 따라 장기요양급여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재활요법과 교육, 상담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과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방문형태의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치료사가 직접 가정에 방문하여 치료할 수 있게 된다면, 지리적 한계로 인해 치료받지 못했던 노인들이 의료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 가정방문 영양사를 통해 영양관리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을 수급하는 노인들은 스스로 음식을 준비해서 제때 식사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몸이 안 좋을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다들 비슷하지 않나. 아플 때는 숟가락 하나 들기도 힘들어서 대충 때워버리게 되는 거.


뿐만 아니라 연령이 높아질수록 소화능력도 약해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먹는 게 보약이라며 손주들 먹이는데 진심이셨던 분들이 막상 본인의 밥상은 힘들다는 이유로 소홀해져 버리신다. 할매, 할배. 그러시면 손주도 속상해요.


고연령 독거노인일수록 영양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30%에 가까운 고령층이 영양관리 주의 또는 개선이 필요하며, 배우자가 있는 노인보다 없는 노인이 약 3배 이상 영양관리를 개선해야 한다고 나타났다.


가정방문 영양관리가 실행된다면 식생활에서 오는 노인들의 질병적 위험을 줄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법안은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인이 직접 병원에 방문하는 것보다 더 낮은 비용이 소요된다.


을지대학교 안창식 교수는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을 전부 따져봤을 때, 방문재활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이 약 2배 정도 경제적 이익이 높다고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혈관 환자의 방문 물리치료 편익이 의료기관 내원 환자의 편익보다 2.04배 높았으며, 사회적 순편익은 192억 가량 절감되었다.


방문재활서비스는 만성질환 발생률과 합병증, 낙상 등을 예방하여 미래의 경제적 부담을 한층 더 줄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것은 인생의 정해진 순리다. 어떻게 보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 긴 세월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OECD의 노인자살률로 봤을 때, 한국의 노인들에게 삶은 축복이 아닌 불행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은 청년뿐만 아니라 노인에게도 해당되어야 한다. 노인은 현재에서 뒤쳐지게 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미래일 뿐이다.


이러한 노인복지를 위한 노력들은 가족, 사회를 넘어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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