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를 이해하는 사회에서의 '법정드라마'의 위치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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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모두의 눈을 의심케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배우 윌 스미스가 단상 위로 올라가 시상 중이던 크리스 록의 뺨을 거침없이 갈겨(이것 외에 더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버린 것이다.


물론 윌 스미스가 ‘알고 보니 마약 중독자였다’, 라는 이유로 그런 짓을 벌인 것은 아니다. 크리스 록이 유머랍시고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삭발한 머리를 보고 <지. 아이. 제인>에 출연하면 되겠다는 말을 웃으며 내뱉었던 것이다.


<지. 아이. 제인>은 배우 데미 무어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작품으로, 특전사 훈련에 참여하는 ‘조단 오닐’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제이다의 삭발은 ‘탈모증’이라는 병 때문이었다.


미국 SNS에는 그를 비난하는 유명인들의 글이 쏟아져 나왔고, 이 일로 인해 윌 스미스는 공식적인 사과문과 함께 10년 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 불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의 반응은 미국처럼 그렇게까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다들 원인을 제공한 크리스 록에게는 아무런 징계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크리스 록의 공연 티켓 값이 10배나 넘게 뛴 현상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머리로는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윌 스미스 하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윌 스미스의 행동에 공감하며 이런 ‘밈’까지 생성됐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미처 풀지 못 한 억울함이 가득했던 걸 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미디어 콘텐츠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의 흥행 요소에 ‘사이다’적인 상황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호흡이 더 빠른 콘텐츠는 한 회차 안에 사이다가 존재하지 않으면 바로 다음 회차부터 조회수가 떨어져 버린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권선징악’적인 상황을 미디어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싶어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처벌받고, 피해자가 보호받는 것이 정의인 사회 안에서 ‘윌 스미스’는 왜 공감받았으며 미디어 콘텐츠에서 ‘사이다’는 왜 필수요소가 되어 버린 걸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초범인 점, 그리고 피고인의 나이를 고려했다.”

이 문장만 봐도 이 앞에 서술되어 있을 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에 대해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처벌, 그 뒤에는 모두 저 문장이 따라붙었다.


뉴스 기사를 통해 나온 판결 사례 중 가해자의 형량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기사화된 판결만이 재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할 지라도, 그렇게나 많은 판결들이 피해자의 억울함과 피해보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한국은 2019년 OECD가 회원국 중 37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법원을 신뢰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신뢰한다’라고 대답한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37개국 중 꼴찌였다는 거다.


국내에서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6%나 달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9%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일관성 있는지, 아니면 판사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86%가 판사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응했다. ‘일관된 편’이라 대답한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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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는 ‘법정 드라마’는 연출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사이다’적인 스토리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다루는 사건 케이스들은 현실에서 차용해오되, 그 결과와 판결은 피해자를 위하고 국민들이 원했던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재판>는 시청자이자 국민들의 니즈를 가장 세련되게 반영한 작품이다. 가해자의 불운한 과거를 범죄 합리화에 이용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적 피해를 조명하며, 선하지는 않더라도 옳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만이 존재한다.


판사들은 사건의 본질에 집중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조치한다. 판결을 할 때는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한다.


국민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이런 모습은 사법 기관으로서 당연한 태도여야 할 뿐인데, 좀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참고로 앞에서 언급했던 OECD 사법 신뢰도 설문 조사 결과를 받은 대법원은 ‘한국의 순위를 어떻게든 빼야 한다’라고 하며 OECD 본부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사법 시스템’이란 단어를 쓰는 바람에 질문이 모호해져 법원과 검찰 어느 곳의 신뢰도가 낮은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비슷한 이유로 대법원은 2017년에 진행된 OECD 사법 신뢰도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을 제외시켰었다. 그 당시에도 한국은 하위권이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속담들은 참 많으나, 굳이 적지는 않겠다. 병원과 법원은 가능하면 갈 일이 없는 것이 좋다는 변호사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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