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제 이야기]- 이론편 (1)

by 공익허브

1.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었던 사건에 대해


현대 사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친구 사이의 사소한 다툼과 같은 작은 분쟁들은 당사자들 사이의 화해나 합의로 해결할 수 있지만, 기업들 사이의 분쟁같이 큰 스케일의 분쟁들은 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분쟁들을 해결하는 역할은 법원에서 수행하게 되죠. 즉, 법원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에 대한 최종 결정자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사법은 모든 문명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법의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국민들은 어디서도 부당함을 호소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법부의 부패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인 것이죠. 그리고 21세기 한국에서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바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법농단’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법에 대한 불신에 불을 붙였고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로 이어졌죠. 이 사건은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사법농단이란 단순히 한 시점의 사건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이나 비자금 조성 등 다양한 층위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부당한 행동들을 총괄해서 부르는 명칭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아마도 대법원의 사법거래였을거에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원장으로 재임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도입하고 싶어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재판 결과에 불만족한 사람들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다시 재판을 요청할 수 있는데요, 이 때 대법원에 3심을 요청하는 것을 상고라고 합니다. 상고법원은 이렇게 대법원에서 처리해야 하는 사안들 중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들을 전담해서 처리하는 기관이었던 것이죠. 상고법원을 만드는 법안은 2014년에 발의되긴 했지만 좀처럼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거래’라는, 말도 안되는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청와대에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대신 청와대에서 상고법원 도입에 힘을 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 공개된 98건의 문건들에서는 사법부가 정부에 협력했던 정황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이 사건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최고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상실


사법농단 사건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정점을 찍는 계기가 되긴 하였지만, 사실 사법농단 사건 이전에도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꾸준히 낮은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인 2015년에 이루어졌던 OECD 보고서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 중 한국의 사법제도를 신뢰한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27%에 불과했으며,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를 기록했거든요. 그리고 2019년에 이루어진 OECD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37개국 중 37등, 즉 꼴등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에 있었던 법원 자체 연구결과에서도 일반 국민들 중 재판절차가 공정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27%에 못 미쳤습니다. 즉,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은 사법농단이라는 사건에 연루된 특정한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사법부 전체의 문제였다는 것이죠.


한국 사법부에 대한 문제로 일반국민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부분은 아마도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공정하지 못한 판결들일 것입니다. 전관예우는 사법절차에서 판사/검사/헌법재판관/경찰 등의 보직에서 최근에 퇴직한 변호사가 선임될 경우 수사나 재판에 있어 특혜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말 그대로 법원이 재벌들처럼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인식을 의미하죠.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오해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전관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사건들에서 집행유예의 비율이 더 높게 나왔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하여 그들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 뿐 아니라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여러 판결들도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낮추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의대생들에 대한 가벼운 처벌은 많은 국민들이 한국의 재판부가 피해자들보다 ‘있는 자들’의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죠. 또한, 조두순과 같은 살인마들에 대한 형량의 가벼움이나 소비자를 기만하고 피해를 입힌 기업들에 대한 가벼운 처벌 등은 국민정서와 궤를 달리하는 판결들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많은 시민들은 법원을 비난하고 있고 법원에서는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은 오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지금 한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려면 우선 이상적인 사법 시스템의 원리와 형태에 대해 알아야 하겠죠? 지금 시작합니다.



3. 사법의 원래 기능이란


현대 사회에서 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법에 대해 “모든 문명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로, 사법은 현대 사회구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헌법학에서는 사법의 개념을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 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작용” 이라고 정의한다고 하네요. 쉽게 말하면, 법에 기반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권위있는 판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법의 공정성입니다. 법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세워진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사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치국가라는 사회구조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법관의 판단에 권위가 실리는 것도 법관들이 ‘제 3자’의 입장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이 사실을 반증하듯, 사법의 개념을 다룬 논문들은 하나같이 공정성을 사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언급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공정성이란 결과의 공정성 뿐 아니라 절차와 과정 역시 투명하고 납득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판을 하는 판사가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만약 정부나 국회에서 법원과 판사에게 이런저런 불이익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재판은 절대로 그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겠죠? 따라서, 공정한 사법부를 위한 가장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재판, 더 구체적으로는 그 재판을 수행하는 판사의 독립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헌법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여 판사로 하여금 완전한 독립된 상태에서 어떤 권력기관에도 속하지 않으며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을 천명하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재판과 판사의 독립은 자연스럽게 판사가 속한 '법원', 즉 사법부의 독립으로 확대되어 오늘날 사법에 대한 논의는 사법부의 독립을 당연한 전제로 두고 이야기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은 사법부의 독립은 그 자체로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사법부의 독립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통해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판사나 판사가 속한 사법부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이죠. 본질적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그에 따른 권력은 “국민을 위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4. 사법부 기능상실의 첫번째 원인 - 제왕적대법원장 시스템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사법부는 어떨까요? 지금 한국의 사법부는 공정한 재판이라는 사법부의 존재의의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언급된 사법불신에 대한 통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부의 독립, 보다 정확히는 재판과 판사의 독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는 다음의 2가지가 가장 큰 원입니다. 바로 모든 판사 위에 군림하는 이른바 제왕적인 대법원장시스템과 관료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스스로 갇혀버린 판사들이죠. 먼저 대법원장의 문제부터 살펴보죠.


한국의 대법원장은 법원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하고 일반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고 판사에 대한 보직인사 및 평가 등 사법부 전체를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왜 그토록 사법부 전체를 주무를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네요. 또한, 대법원장이 총괄하는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법원행정처 역시 대법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죠. 즉, 지금의 법원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철저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서열화된 조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내에서 과연 판사들이 마음 놓고 스스로의 양심에 맞게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박정희 전대통령의 집권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자 했던 박정희에게는 법원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판사들 개인들도, 독립적인 기관인 법원도 쉽게 통제할 수 없었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는 1972년의 유신헌법을 통해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하도록 바꾸는 동시에 대법원장이 법원 전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대법원장만 자신의 사람이 되면 법원 전체가 자신의 것이 되었던 거죠. 그리고 법원 위에 군림하던 독재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대법원장은 법원 내에서 제왕적인 위치를 유지해왔고, 그것이 서열화된 법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5 .사법부 기능상실의 두번째 원인 - 관료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스스로 갇혀버린 판사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주의에 오랜기간 노출된 법관들은 자신들 개개인을 헌법이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기관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부장판사, 대법관 등의 상위직급으로 승진해야하는 공무원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독립적이어야 할 판사들을 상관을 지시를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의 행정부 공무원같이 만들어버렸고 그 결과 재판의 독립이나 그를 통한 공정한 재판이 위협받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과거 사법시험이라는 단일한 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이라는 집합기관에서 2년간 집합교육을 받아 판사, 검사, 변호사의 자격을 갖게되는 우리의 사법인력양성제도 역시 사법연수원 수료 기수를 통한 동료와 선후배라는 폐쇄적이고 엘리트적인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법부에게 독립과 그에 따른 권력을 쥐어준 이유는 명백합니다. 외부세력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독자적으로 법과 양심에 따라서 “국민을 위하여” 정의롭게 판결하도록 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지금의 사법부는 외부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폐쇄적인 관료사회를 구축하고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하나의 권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몇 년 째 계속 언급되고 있는 사법개혁의 문제조차 사법부에서는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바꾸려고 하고있죠.



6.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 사법개혁의 일환으로서의 배심제도


이렇듯, 현재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그 취지와는 달리 독립이라는 명분 하에 스스로 하나의 권력이 되어 있으며 국민을 위해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원래의 취지에서 상당히 어긋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해법 중 하나가 배심제의 도입 및 확대입니다.


배심제는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해서 평결을 내리고, 그 평결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사건에 한하여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배심제가 형사재판 뿐 아니라 민사에도 도입되고 배심원들의 권한이 강화된다면 이는 관료화되고 권력화된 사법부를 개혁하고 국민들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판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법관이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에 불안감가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많이 존재하지만, 지난 10여년동안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볼 때, 배심원의 결정과 재판부의 결정은 상당히 높은 일치도 (93.2%)를 보여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배심제는 사법부의 문제로 늘 언급되는 전관예우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개념적인 측면에서도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헌법의 정신에 부합합니다.



7 선출되지 않은 (과도한) 권력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의 국민주권주의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국민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은 근본적으로 국민들에게서 나와야 하며, 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합니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공감대가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즉, 한국의 입법부인 국회와 행정부인 청와대는 둘 다 국민의 손에 의해 직접 선발된 인물들로 구성되는 것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요? 한국은 이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립의 나라잖아요? 실질적으로 국가를 주도하는 세 주체인 입법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 중 사법부만이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이 아니라 입법부인 국회의 동의를 얻어 행정부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하게 되지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현재 과도하게 많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관료화와 폐쇄적인 엘리트 조직 형성을 통해 스스로를 권력화하고,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측면이 존재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폭로들은 이렇게 변질된 사법부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죠. 즉, 지금 한국의 사법부는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많은 힘을 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당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배심제입니다.



8 배심제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수단이다


미국 건국의 주요인물 중 한명이자 미국의 제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판사들은 뇌물에 유혹받기 쉽고, 자신의 취향이나 인간관계,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념, 또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대한 헌신에 의해 잘못 오도되기도 한다. 결국 동전을 던져서 앞뒷면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고 말하며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내려지는 사법결정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그가 제안했던 것은 배심제였죠. 이러한 의식을 공유한 미국의 개국공신들은 배심제를 동료 시민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로 해석하며 헌법에 배심재판받을 권리를 명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미국에서 배심제는 실제로 시민의 의지로 권력에 저항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권력의 의지가 부당하다고 여겨졌을 때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그 의지에 대항한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1990년대 미국 오클랜드 시에서는 약물 중독자들에게 주사기 바늘을 배포한 사람들이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에 오클랜드에서 주사기 바늘을 배포하는 것은 의료 종사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이었기에 원칙대로라면 이들은 벌금형에 처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약물 중독자들이 낡은 주사바늘 대신 깨끗한 바늘을 사용하도록 하는 활동가들이었고,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립니다.


18세기에 토마스 제퍼슨이 가졌던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의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확대 도입된다면 이는 한국 사법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배심제도의 본질이 바로 위와 같은, 사법부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니까요. 오직 사법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재판이라는 권한을 일반 시민이 나누어 갖는 배심제, 사법부가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고 사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던 지금의 한국에서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가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9 한국에 배심제도가 있었다면…


이런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만약 한국에 미국과 유사한 형태의 배심제도가 존재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과거 한국에서 도시재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농민들이 사용하던 토지에 대한 대대적인 수용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농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기에 농민들의 입장에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그 당시 농민들은 건설회사의 담장에 기어오르고 건설 예정지를 파괴하는 등 급진적인 방식으로 저항했고, 그들을 지지하는 여론과는 무관하게 공무집행방해 등의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당시에 법관이 아닌 배심원단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졌다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농민들에 대한 판결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더 최근의 사건들 중에서도 배심제가 사용되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사건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다양한 성범죄 사건들이 발생했고 그 때마다 범죄자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은 많은 대중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의대생이 집행유예를 받고 학교에서 계속 수업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국민들이 배심재판에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보탰다면 이들에게도 잘못에 비례하는 처벌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촉법소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호 등 국민정서와 반대되는 법원의 판결들은 복잡한 법리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속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미국과 같은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배심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러한 다양한 사건들에서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10 전문성에 대한 우려와 그에 대한 대답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지점은 아마도 전문성의 결여일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며, 때로는 법리적으로 일반인들의 시각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법관이 아닌 대중의 시선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죠. 또한, 법률 전문가인 법관들에 비해 일반 시민들은 감정에 휘둘려서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과연 이러한 우려들이 정확할까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10여년간 시행되어온 국민참여재판의 통계를 보면 위와 같은 우려는 상당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반 국민들의 판단이 법관들의 판단에 비해 그 질이 떨어진다면 이들의 판단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야 하겠지만, 2008년에서 2017년 사이에 있었떤 2,267 건의 국민참여재판 중 93.2%에 해당하는 2,112 건에서 평결 결과와 판결이 일치하였다고 합니다. 즉, 대부분의 경우 배심원들의 판단은 판사의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특히, 배심원들과 재판부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았던 경우에도 대부분 배심원들이 무죄평결을 내렸다고 하니, 배심원들이 감정에 휘둘려서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우려를 차치하고도 배심원의 판단에 대한 불신은 그 근본부터 조금 이상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은 국민 개개인에 대한 신뢰입니다. 국민 개인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우리는 각자가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투표를 통해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맡기는 것이죠. 이렇듯 가장 좋은 결정은 국민 전반이 만족하는 결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재판에 있어서도 국민 전반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정도는 만드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닐까요?




11 현행 국민참여재판의 한계와 개선방안



물론, 현행 국민참여재판에는 다양한 한계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국민참여재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한국의 사법체계 안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차지하는 위치에 기인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이러한 한계들은 국민참여재판을 더 확대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첫 번째 문제는 실질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이 적용된 형사사건의 수가 많이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시행 초기부터 2017년에 이르기까지 배심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은 총 143,807 건이었지만 이 중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접수된 건은 4%에 불과한 5,701 건이었습니다. 여기에 이 5,701건의 40%가 넘는 2,227 건은 신청인 스스로가 배심재판을 철회하였으며, 1,075 건은 법원의 의지로 배제되어 결국 2,267 건만이 참여재판으로 진행된 것이죠.


배심재판이 이렇게 낮은 신청률과 높은 철회율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여재판을 신청하지 않은 피고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참여재판의 존재를 몰라서 신청하지 않은 비율이 무려 62.4%나 되었다고 합니다. 참여재판을 선택할 경우 불이익이 생길까봐 두려워서 신청하지 못한 이들도 30%나 되었고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 후 철회한 사람들의 경우 참여재판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잘못 신청해서, 참여재판의 효력이 권고적인 수준밖에 안되어서, 검사와 판사가 싫어할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신청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국민참여재판이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지 않은 것은 그 제도의 내재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 주변 환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참여재판의 존재 자체를 몰라서 신청하지 않은 사람이 62.4%나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민참여재판이 정작 배심재판을 필요로 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또한, 상당수의 피고인들은 판사와 검사의 눈치를 보며 신청을 포기하거나 철회하였는데요, 이것은 한국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민의 참여를 통해 이러한 불신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배심제이죠.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참여재판의 실질적인 확대와 이에 대한 정보 제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부 형사재판에서만 배심재판이 적용 가능한 현행 제도를 개선하여 모든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서 원칙적으로 배심재판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이와 동시에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를 잘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이들이 없도록 재판의 당사자들에게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알려주고 신청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여 제도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참여재판의 또 다른 한계점은 평결이 권고적 효력만을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헌법 제 27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민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천명한 미국의 헌법과는 반대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못박은 것이죠.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하긴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배심원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위헌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국민참여재판은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배심원에게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하는 것은 참여재판의 효용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배심원의 의지와 무관하게 법원이 자신의 의지대로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려온 국민참여재판 이전의 재판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니까요. 특히 법원과 배심원단의 판단이 달라지는 사건들의 경우에는 시민들의 관점과 다른 판단으로 인해 법관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욱 줄어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법관의 판단을 배심원의 판단보다 우월시하는 이러한 제도는 결국 국민을 신뢰하고 국민에게 국가의 주권을 맡긴다는 민주주의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배심원단의 평결 결과가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도록 제도를 개선하여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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