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병원

내가 없는 나의 오늘 하루

by 서고

내가 사는 이곳은 위도가 한국보다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라, 겨울이 되면 해가 빨리 지고 늦게 해가 뜬다. 거기에 시골에 살다 보니 거리의 빛은 뿌연 가로등불빛만 의지하고 걸어야 한다. 나로선 축축한 공기에 한가득에 뿌연 가로등불이 듬성듬성 비추어주는 깜깜한 바깥세상을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웬만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다.


동이 트기 전부터 깜깜한 어둠과 사투를 겨루며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다. 한참 잠이 많은 아이를 달래 가며 깨우고, 난 부엌에 내려가 밥을 짓고 계란 6알을 냄비에 넣고 가스불을 켠다. 남편과 아이 도시락과 물병을 준비하는 사이, 옆에 가스레인지에선 계란 여섯 알이 뜨거운 물속에서 댕글댕글 소리를 내며 열심히 익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가 내려오고, 남편이 내려오고, 자신들이 먹을 아침을 챙겨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열심히 먹는다. 마치 전화기가 파워뱅크에서 충전을 하듯 말이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창문을 보면 어느새 해가 나와 세상은 밝아져 있고, 나 또한 그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한편에서 드립커피를 내리며, 삶은 계란 두 알과 귀리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를 가고 남편도 직장에 가고 혼자 조용히 남은 난 내 책상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이메일을 체크하며, 급하게 온 메시지는 없는지 오전에 회일일정은 없는지 빠르게 검색한 후, 급한 일정이 없으면 그제야, 조금 전 만들어 놓은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눈뜨자마자, 정신없는 아침일정을 보내고 책상에 앉으면 잠시나마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통근버스에서 막 내려 회사에 도착하여 책상에 자리 잡은 그 마음이랑 비슷한 감정선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 동료들과 화상회의를 하기도 하고, 문자로 간단한 일 처리도 하고, 정기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리포트도 작성도 하면서 하루는 오전에서 점심시간으로 그리고 이른 저녁시간으로 흘러간다. 다시 또 어둑한 밤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노트북을 닫고 퇴근을 하여 다시 부엌에 내려오면, 하루 종일 내가 오며 가며 마신 물컵들, 커피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점심그릇들이 쌓여있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도 이것저것 부엌에서 간식을 챙겨 먹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시 또 난 부엌정리를 하고, 냉장고를 열어 저녁을 준비하고,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또다시 정리를 한다.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 난 평소에는 잘 넘기다가도 어느 날엔 견디기 힘든 무력감과 갑갑함이 함께 다가온다. 마치 내가 없는 나의 오늘 하루를 보낸 것처럼 말이다. 이 감정은 나 스스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어쩌면 엄마는 이래야 된다는 것, 아내는 이래야 된다는 것을 나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한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본 엄마들, 아내들의 모습을 모방하여 흉내를 내다보니,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행동하는 자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감정선이 켠켠이 쌓이다 그 힘든 감정이 문득문득 흘러나오는 것 같다. 마치 한창 소나기가 내리면 빗물 받는 양동이에 찰랑찰랑 물이 차 양동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양 말이다.


이런 감정이 흘러나오면 난 우리 집 앞 100미터 전방에 있는 동네 공원에 간다. 중간에 큰 잔디밭이 있고 잔디밭 둘레는 산책하기 좋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난 하염없이 걷는다. 깜깜한 어둠 속에 듬성듬성 켜져 있는 가로등, 유독 비가 많은 겨울, 젖은 낙엽은 한가득 길 위에 누워있고, 20미터 전방엔 가로등이 없으면 어둠을 뚷고 걸어야 한다. 고요 속에 걷다가 행여 사각사각 발자국소리가 들리면 더 무서운 이 공원에서 난 하염없이 걷는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젖은 낙엽들이 다 닦아주는 듯, 조금은 개운해진다. 내 양동이의 물도 더 이상 출렁거리지 않고, 잔잔하다.


그렇게 난 공원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을 보면 또 살만하다.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 나다운 가족 사랑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도 과거에 엄마인 적도 아내인 적도 없는 존재들이었니까. 어쩌면 이 감정선들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의 또 다른 모습일거간 생각을 하며 괜찮아.. 하며 나를 다독인다.

작가의 이전글맥주 한잔 그리고 주꾸미튀김의 위로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