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생각 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몇 년 전 지인을 통해 일식당을 남편과 운영하신다는 큰 언니벌인 유쾌한 언니를 알게 되었다. 첫 만남임에도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과 함께 첫 만남의 어색함 없이 서로가 스스럼없이 깔깔 농담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품이 큰 언니셨다. 이국땅에서 시골변두리 동네회사에 다니며 딱히 한인들과 교류를 하는 단체에 소속이 되지 않아 편협한 사회관계망속에서 사는 난 처음에는 알아가는 과정에 낯가림을 하는 편인데 이 언니는 나에게 어느 틈도 없이 쑥 내 안에 들어오셨다. 그분의 너무 솔직하고 뜨끈한 마음의 온도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와 나도 쏙 빨려 들어간 거 같다.
어느 날 함께 밥도 먹고 산책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 나도 시간이 허락이 되어 볕이 좋은 봄날 그분 동네 맛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카페 이름이 제니네 카페인데 메뉴판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되었고 양도 푸짐했다. 우리는 재킷포테이토와 샐러드 한 접시를 시키고 동네카페 스타일의 걸쭉한 라테 한잔까지 든든히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연신 언니는 이 식당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남편이라 쉬는 날 아침 브런치를 즐겨 먹으러 오는 즐거운 장소라고 한껏 들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 또한 주위를 둘러보니 노부부가 맛있게 식사하고 계신 테이블도보이고 어린아이들이랑 함께 가족끼리 식사하러 온 테이블도 보이고 근처 현장근무를 하시는 남성분들이 거친 손등을 보이며 숨돌리며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부엌 안에는 모녀간일지 고부간일지 모르겠으나 분명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안에서 버거랑 베이컨을 굽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 모든 모습들이 한국에서 가족끼리 일군 동네 분식집을 연상하게 했다. 이런 친숙한 분위기를 언니도 그리워 남편과 즐겨 찾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는 그렇게 맛나게 먹고 하하 호호 낄낄낄대면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밥값을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가는데 언니가 굳이 내가 내고 싶다고 난 이렇게 밥 사주는 게 너무 행복하다 하시며 내 손을 막으셨다. 그렇게 실경이를 벌이다 결국 난 언니에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넙죽 인사를 한 후 나오는 길목에 꽃집이 보여 언니에게 꽃을 선물하겠노라 선포했다. 감사하게도 언니는 나의 뜻을 존중해 주셨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었다. 여기에 오래 살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면서 긴장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만난 관계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없이 주고 싶어 하는 게 참으로 신기했던 그 언니가 가끔 생각이 난다. 한없이 좋은 모습만 보려고 하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시고 반겨주는 그 언니를 제니네 카페에서 먹은 식사가 마지막이 될지는 그때는 몰랐다.
나와 첫 대면을 했던 그때 이미 몇 년 전부터 투병생활을 하고 계셨다. 지인으로부터 들어 자세히는 모르나 아프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언니도 이야기 하지 않으셔서 나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우리는 만나는 그 순간에는 그 현재에 충실하며 최대한 많이 웃고 최대한 느긋했고 최대한 평안했다. 자기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분명한 건 얼마남 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계셨다는 걸 간간이 보이는 눈빛에서 그리고 의도와는 다르게 나오지 않는 텁텁한 목소리의 울림 속에서 난 알 수 있었다.
제니네 카페 이후에 간간이 볕이 좋은데 산책하시는 거 어떠시냐고 문자를 드리면 한참 후에 답장을 주셨는데 따뜻한 톤으로 담에 보자는 말씀을 하실 때 많이 힘드시구나 생각하면서 꼭 조만간 뵙자고 인사를 드리기 몇 차례. 그 후에 지인으로부터 부고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난 생각보다 차분했고 죽음에 대해 무섭고 슬픈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겸허한 자세가 먼저 떠올랐다. 난 그 언니에 대한 기억이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존재로 내 기억에 선명이 남아있고, 정겨운 제니네 카페의 분위기가 떠오르고, 따스한 야외가든센터의 카페에서 여름에 뜨거운 볕 밑에 파라솔 아래에서 선선한 바람과 청량한 언니의 웃음소리가 기억이 난다.
죽음을 생각하면 세상사가 좀 쉬워진다. 어차피 죽는데 아웅다웅 다 부질없다. 아마도 투병생활 속에서 언니는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방인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나름 살아보겠다고 장착한 나의 무기들은 어쩌면 내 마음을 들키지 않고 세 보이는 척하는 척의 삶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오랫동안 한 나에게 그 언니는 언니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셨다. 어쩌면 별 의미 없이 별에서 온 나는 다시 별로 돌아가는 아주 자연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힘주고 살 필요 없음을 상기시켜 준다. 파릇파릇한 식물이 물과 햇빛 그리고 좋은 미네랄이 듬뿍 있는 토양 속에서 풍성하게 한 계절을 살고 또 다른 씨앗들에게 물려주듯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풍성하게 누리면 된다는 것을…
오늘 제니네 카페 앞을 운전하며 지나치면서 언니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