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에세이라면 문법이 조금 틀리거나 표현이 어색해도,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그것마저 하나의 "맛"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소설은 일본어로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한국어였다.
한번 써볼까.
그런 생각으로 소설을 쓰다 보니, 일본어로 쓸 때보다 술술 말이 나왔다.
소설은 풍요한 어휘와 표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어보다 모국어인 일본어로 쓰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람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고민 끝에 아무것도 고르지 못할 때도 있다.
어쩌면 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어휘가 많으니 일본어로 쓸 때는 더 고민하게 되어서 손이 멈춘다.
더 적합한 단어가, 더 훌륭한 표현이 없을지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어 말이 나오지 않게 된다.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소설은 한국어로 쓰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어휘가 제한되어 있어 오히려 덜 고민하게 되고, 모국어가 아니기에 감정과 생각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있다가 잇따라 생각이 떠오르면서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조금씩 써 내려가며, 언젠가 내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옛날에 읽은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배움을 위해 다시 읽고 싶어졌다.
내가 선호하는 일본 작가 중 하나가 "오츠이치"다.
그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 "ZOO"와 "GOTH"였다.
언니가 빌려준 그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깊은 공포에 휩싸였고 섬뜩함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와 똑같은 "사람"이 쓴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지구가 아닌, 우주의 아득한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 그의 소설은 나에게 충격적인 작품이었고, 천지가 뒤집혀 나의 세상을 완전히 바꿨다.
처음 읽은 소설의 영향으로 오츠이치 작가님은 공포스러운 작품만 쓰는 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둠 속의 기다림"이라는 소설을 읽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츠이치 작가님은 다양한 작품을 쓰는 분이다.
작품에 따라 이름마저 바꾼다.
때로는 "나카타 에이이치"가 되고, 때로는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여성 이름으로 소설을 쓴다.
이렇게 여러 얼굴을 지닌 그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색깔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작가도 각각 다른 문체와 분위기를 갖고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성격이나 가치관이 변해가듯 글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어떤 성격을 지녔을까. 그리고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