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면 늘기 마련이다.
여기서 고백할 사실이 하나 있다. 사실 나는 운전면허 시험에서 한 번 떨어진 적이 있다. 초록 불을 보고 출발했는데 갑자기 주황불로 바뀌더니 빨간 불로 바뀌는 게 아닌가. 빨간 불엔 정차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충실히 실행하여 차를 세우고 보니 교차로 한가운데였다. 차 빼라고 사방에서 빵빵대며 난리가 났다. 그랬더니 옆에 타신 감독관님이 다른 차 주행 방해로 시원하게 ‘실격’을 외치며 나보고 차에서 내리란다. 뒤에 또 다른 수험생도 타고 있었는데 민망하기 그지없고, 처음으로 받아보는 클랙슨 세례에서 눈물이 찔끔찔끔.
이후 필기와 기능 시험은 합격했으니 다시 해보라는 엄마의 기나긴 설득 끝에 면허를 딸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여러 운전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 한 몸 희생해 운전면허는 고이고이 장롱 속에 넣어 두기로 했다…는 건 거짓말이고,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내 형편없는 실력에 운전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그 시절 나는 핸들을 어느 방향으로 꺾어야 뒤로 똑바로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또 항상 화가 나있는 듯한 자동차와 그의 차주들이 무섭기도 했다. 대중교통 잘 되어 있지, 내 두 다리 실로 튼튼한데 자가용은 무슨 놈의 자가용! 길바닥에 석유를 내다 버리면서 각종 환경오염의 주범인 차 따위 까미나 줘버려! (까미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그랬던 내가 지방으로 이사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차 없이 다니다간 걷다가 하루가 다 갈지도 모르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슈퍼를 갈라치면 걸어서 20분, 카페를 갈라치면 걸어서 40분. 에이 더러워서 운전 배우고 말지! 하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왼팔을 창문에 딱 걸치고 시원~하게 겨드랑이 땀을 말리며 한 손으로 운전할 수 있는 경지까지 와있다. 핸들을 왕창 감았다 풀었다 하며 앞으로 뒤로 나가는 내 모습이 가끔은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겁도 많아 운전은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절대적인 세상을 하나둘씩 깨 가며 이 나이에도 앞으로 나아가기도 성장하기도 하나보다.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무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가도 그 순간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그래도 손톱만큼씩은 성장해 있었다. 그러니 오늘도 힘을 내야 한다. 훗, 이제는 운전 따위…. 가소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