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랄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개지랄, 생지랄, 미친 지랄, 지랄지랄 중 하고 많은 지랄 중에 내가 제일 잘하는 지랄은 돈지랄이다. 돈지랄이 여타지랄과 다른 점은 내 피 같은 돈을 써가면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려서는 하고 싶어도 못했기에 돈을 쓰는 그 짜릿함은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한테 받는 용돈으로 또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 그렇게 써대면 욕이나 대차게 먹을 뿐이다. 이랬던 내가 30대를 지나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들기 시작하며 돈지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 번 눈에 꽂힌 아이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사야만 했다. ‘이렇게 비슷한 건 집에 있잖아, 이걸 사면 진짜 돈 낭비야’ 라며 애써 내 마음을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사지 않으면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눈앞에서 왔다 갔다, 아른거리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었다.
여기에 뭐든지 세트로 그리고 깔별로 사야지만 만족해하는 이상한 취미까지 있었다. 원피스보단 투피스를 좋아했고, 맘에 드는 옷은 색깔 별로 소장해야 했으며, 나 혼자 사 입고 내 것만 사기는 미안하니 뭐든지 남편 것까지 구입하며 남부끄러운 커플룩과 커플아이템을 완성시켰다.
집안에는 없는 게 없었고 많기도 많았다. 신발장을 넘어서 현관까지 들어찬 신발만 보면 두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삼대에 걸쳐 아버지의 아버지까지 모시고 사는 집 같았다. 무릎이 시리면 또 얼마나 시리다고 무릎담요는 사이즈 별로, 캐릭터 별로 10장은 족히 넘는다. 사람이 둘이니 입도 두 개인데, 국그릇이며 밥그릇, 접시, 소주잔 등등은 종갓집 식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반강제 적으로 구매 금지령을 내려받고 자숙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다가 엄마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면서, 24시간 레이더 망을 높이 세우고 매의 눈으로 나를 감시하는 여자분 한 분과 남자 한 분을 모시게 됐기 때문이다.
뭘 하나 사기라도 하면 ‘하루에 택배가 몇 개씩 오는 거냐’ ‘또 뭘 샀냐’ ‘여태 샀는데 더 살게 뭐가 있냐’ ‘저것들 언제 다 쓰고 죽을 거냐’ ‘네가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냐’ 등등 글자는 다르나, 쓸데없는 데에 돈을 왜 쓰냐는, 알고 보면 같은 의미의 말을 돌려가며 하는 엄마가 있으며, ‘사지 말라는 게 아냐… 그냥 좀 쉬었다 사면 안 되겠니?’라는 반절은 포기한듯한 남편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광적인 소비 열풍에 반대하며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운동에 참여하는 깨어있는 지식인으로서, 대내적으로 제발 이제는 그만 좀 샀으면 하는 가족들의 여론을 받아드려 여태 기쁨으로 여겼던 돈지랄을 잠시나마 내려놓아보려 한다. 쓰는 재주 보단 버는 재주가 더 특출 나게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잠시 잠깐 멈추는 것도 미덕일 것이다. ‘여보, 여보가 그랬다~ 사지 말라는 게 아니고 잠시만 쉬었다 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