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 예민한 사람, 그건 바로 나.
나는 안전 염려증에 범상치 않은 예민함을 갖춘 사람이다.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 2번 3번 확인해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어찌어찌하다가 밸브가 지 스스로 돌아가서(?) 집에 불이 나도 나면 어쩌지’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완전히 꺼져있는 밸브, 거실 전등, 전원이 뽑혀 있는 휴대폰 충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나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예민함 테스트라는 것을 하게 됐고 그 결과 내가 극도의 예민함을 갖춘 사람임을 알게 됐다.
*끔찍한 영화나 tv를 보지 못한다. Yes!
*문단속, 가스, 불, 지갑이 제대로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한다. Yes! Yes! Yes!
*가족이 늦게 들어오면 사고가 난 것 같아 불안하다. Yes! Yes! Yes! Yes! Yes!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中 – 전홍진 지음>
스스로를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민함의 근거들이라고 하니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함께 살기에 그리 좋은 짝꿍은 못될 것인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매사를 계획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치밀함’까지 갖고 태어났다. 앞 일을 미리 계산해 계획해야 함은 물론, 메인 계획이 틀어질 것을 대비해 plan B, C, D까지 미리 짜놔야 하고, 만약 이 계획에서 1이라도 흐트러지면 내 멘털도 함께 아작 나는 그런 유리멘털까지 가졌다.
여러모로 옆에 사람 피곤하게 할 상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나’를 반려자로 맞아주겠다는 사람과 살고 있다 (역시 짚신도 짝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문단속을 여러 번 하는 나를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며, 자신이 한 번 더 확인했으니 안심하라고 하는 그를 만날 수 있어서 마음 편히 집을 떠날 수 있었다. 또 예민하고 치밀한 성격은 일터에서 꼼꼼함이 되어버려, 가끔은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예민함의 장점이 내 능력을 돋보이게 할 때 있지만 그건 아주 잠시 잠깐. 그 지나침으로 인해 타인은 물론 나 스스로도 지치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걸.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