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공예 실험.도전
직업훈련 과정으로 교도소 수업을 하면서, 하루종일 한지를 만지는 사람들에게 모험적인 시도를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다 보면 지루함이 밀려올 수도 있고, 흥미를 잃지 않고 한지에 빠져서 하루가 즐겁기를 바라는 맘에 고민을 하게되었다.
하루종일 한지에 빠져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괜히 신이 났다.
그래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한지공예의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지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수업...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수업...
한지공예의 기본기...
그래서 첫번째로 생각한 것은 한지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었다.
“한지는 뜯어야 한다.” 칼로 자른 직선이 아니라 손으로 뜯은 자연스러운 결이 작품에 더 깊이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지를 뜯으면 나오는 솜털처럼 얇고 실 같은 닥섬유들이 서로 엉키게끔 작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 작품이 하나의 통으로 완성된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이음새가 표시 나지 않게 된다.
나는 이런 방법을 고수했다.
가로로, 세로로 뜯어보며 결의 방향을 확인하고, 그 결을 이용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한 장의 한지를 붙이더라도 결의 방향이 틀리면 어색해 보일 수 있기에, 방향을 맞춰서 작업했다.
이는 특히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때,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한지를 손으로 뜯어보며 생각했다. 결이 살아 있어야 한지 특유의 자연스러운 멋이 살아난다.
작품의 결이 자연스러울수록 보는 사람도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게 될 테니까. 가끔 실수로 찢어진 부분도 생기곤 한다. 이럴 때는 한지의 결을 살려서 보수하는 것이 중요했다. 결을 살려가며 보수를 하면 마치 원래부터 완벽했던 것처럼 티가 나지 않는다. 이 결을 찾는 과정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따라가는 것과 같았다. 작은 결 하나하나에 자연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
다음은 풀의 중요성이다.
여름이 되면 밀가루 풀은 상하기 쉽다. 한지공예에 있어서 풀은 작품의 내구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온도에 따라 금방 변질하곤 했다.
풀에서 냄새가 나거나 점성이 떨어지면, 작품의 견고함도 당연히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풀을 더 오래, 더 단단하게 유지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을 첨가하면 풀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설탕을 넣으면 더 반짝거릴까 싶어서 설탕도 넣어보고, 공기 정화 효과를 기대하며 아로마 향도 넣어보았다. 계핏가루, 목초액, 녹차 가루도 넣어봤는데, 한지의 색감이 지저분해지는 단점이 있어 포기했다.
“풀을 조금 덜 상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식초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식초는 밀가루 반죽할 때 글루텐 형성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이다.
그래서 식초를 넣어봤더니, 확실히 상하는 속도가 늦춰졌다. “이거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풀을 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름철에는 보통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상하던 풀이, 식초를 넣으니 며칠씩 버텼다.
물론 풀을 자주 끓여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여전했지만, 그 덕에 내 작품은 더 오래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특강을 나갈 때도 항상 밀가루 풀을 끓여서 가져 다녔다.
물론 가루풀은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상하지도 않으니 수업 준비는 훨씬 수월해진다.
하지만 나는 한지공예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번거롭더라도 전통풀을 고수했다.
풀을 끓이는 것이 수고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나는 밀가루 풀을 사용할 때의 단단함과 내구성,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루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특강을 준비할 때면 전기 포트, 전기 버너, 풀 솥으로 쓸 냄비 등을 챙기고, 밀가루와 물을 준비했다.
전통 풀을 끓이는 작업은 간단해 보이지만, 제대로 된 방법으로 끓이지 않으면 원하는 점성을 얻기 어렵다.
나는 먼저 포트에 물을 올리고, 찬물에 미리 밀가루를 섞어 넣는다. 그런 다음 끓는 물에 밀가루를 천천히 부어 넣어야 한다. 처음에는 몰라서 찬물에 밀가루를 섞은 후 그대로 가스레인지에 올려서 끓였지만, 그렇게 하면 점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밀가루 풀은 끓는 물에 섞어야 점성이 더 좋아진다. 한 번 뽀글뽀글 끓어오른 뒤, 불을 끄고 5분 정도 더 저어주면, 부드럽고 끈적한 풀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풀을 쓰면 한지가 더 견고하게 붙고, 시간이 지나도 단단하게 유지된다.
한지와 풀이 만나면서 생기는 섬세한 결, 그리고 그 결이 서로 엉키면서 단단해지는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한지공예가 소박한 공예 이상의 가치를 가진 예술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 결이 하나로 이어질 때, 작품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한지공예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들고, 보존가치를 높이는 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