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대화는 0점
나라에서 하는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실은 지원비를 받으려는 목적이 크다. 아무튼!
직업심리검사 과제를 받았다.
흥미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성장 배경은 어땠는지 등 30분 넘게 설문에 답했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데, 생각보다 자세한 분석에 놀랐다. 형식적으로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질문이 많을까 싶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성격, 성향 등을 다 분석해서 추천 직업까지 나오더라. 오랜만이 나라가 열심히 하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질문 중에 학창 시절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몇 개 있었는데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편이다 등에서 고민했던 앞 질문들과 다르게 '그렇지 않다'에 확실히 체크하는 나를 발견했다.
'학창 시절 고민이 있을 때 주로 부모님과 의논했다'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실제로 그래본 적이 없다. 장래에 대해서도, 친구들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아빠와 딸의 관계라 그런 걸까. 기억 속 학창 시절에는 딱히 아빠랑 웃으며 대화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면서 조금 대화가 늘어난 것 같긴 하다. 떨어져 지내니 아빠가 보고 싶었던 날들도 있었다. 전화하다 운 적도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ㅎ 대화는 없어도 내적 친밀도랄까, 아빠에게 엄청 의지했던 건 사실이다.
차가 없으면 등교할 수 없는 거리에 살았지만, 버스를 타고 등교해 본 경험이 딱 한 번 있다. 그것도 방학에 늦은 수업시간에 맞춰 가느라. 아빠는 늘 학교에 데려다줬고, 데리러 왔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학교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아빠를 만났다. 꽤 먼 거리에 학원을 다닐 때도 아빠는 왕복 한 시간 반 거리를 매일 데리러 왔다. 성인이 돼서 가끔 집에 갈 때도 늘 터미널 앞에 날 데리러 왔고, 1년 동안 호주에서 지내고 귀국한 날은 공항으로 데리러 왔다.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딸인가,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아끼는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 지표가 말해주는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0에 수렴하는 숫자가 나왔지만, 실제 우리의 관계는 그보단 낫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나는 많은 대화를 하겠다 다짐한다. 어떤 고민도 나와 나눌 수 있길 바라면서 사랑 많은 아이로 자라길. 나의 결핍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지난 주말 고향에 갔을 때, 이번엔 내가 아빠를 모셔다 드렸다. 내가 운전을 하는 차에 아빠를 태워드린 건 처음이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