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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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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배 Jul 05. 2023

회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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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화려한 나의 20대는 국가를 위해 군 생활 34개월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을 향해 돌아왔다. 막상 전역을 하고 나니 많은 아쉬움이 있다. 비행기를 탈 수도 없고 짜릿했던 낙하산도 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특전사라는 자부심이 가슴 가득하게 남아 있었다. 

  전역 후 회사에서 엽서가 날아왔다. 재입사 면접을 보라는 통보였다. 면접 날에 회사로 올라 같다. 면접을 보는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 책정에서 군입대 전 근무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신규 채용자로 적용하고 공고 졸업과 군 경력만 인정해서 임금을 책정한다고 한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임금 격차가 많이 생긴 것이다. 순간 상당히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런 회사가 국내 손꼽는 자동차 회사였다.     


  내 생에 후회를 남긴 결정이 바로 그날이었다. 화도 난 상태에서 차라리 이곳보다 중소기업을 택하여 열심히 일하면 고졸 학력이라도 승진도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으로 면접장을 나와 버린 것이다. 내 중학교 동창 녀석은 그곳에서 정년 퇴임을 했는데 나도 재취업을 해서 그곳에서 일했으면 아마 안정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친인척의 소개로 취업한 회사는 작은 피혁 가공업의 회사였다. 공고 출신이라 공무과에 취업하였는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근로 조건이 완전히 엉망이었고 심지어 기본 인권마저도 찾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미래는 고난의 길을 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회사의 불합리한 임금 구조로 인해 나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로 상담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회사 측 대변인처럼 들려오는 말 뿐이었다. 도무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을 때 국가에서 공인 노무사 시험 제도가 생겼다. 노, 사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하는 업무를 하는 자격증이다. 그래서 나도 공인 노무사가 되어 어려운 근로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 과목으로 당연히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은 있으나 마나 하는 법들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노동조합이 없어서 혼자 항의를 해 보아야 소위 찍히기만 할 뿐, 권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꾸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바뀌어야 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의감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후 같은 업종의 회사인 고양시 쪽 회사로 이직을 했다. 함께 근무하던 형이 오라고 하여 이직을 했는데 그곳은 더 열악한 근무조건이었다. 식사를 전혀 제공하지 않아 모든 노동자들이 도시락을 가져다 놓고 식은 식사를 했다. 휴식 시간마저 쉬는 공간이 없어 일하던 현장에 종이를 깔고 쪼그리거나 앉아서 불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뿐인가 조출에 철야까지 장시간 노동으로 밀려오는 졸음을 떨쳐내려고 커피를 커다란 병에 담아서 기계 위에 올려놓고 마셔가면서 일을 했다. 기계는 안전장치가 없어 위험했고 안전사고는 다반사였다. 사고를 당해도 산재 처리를 받기도 어려웠다. 또 각 부서 반장들의 권력형 폭력은 가히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심지어 여성들은 반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몸을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하고 역사적 요구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민주적 노동조합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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