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회상 0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배 Jul 07. 2023

회상 9

노동조합 설립

  전에 다니던 인천 회사에 잘 아는 동생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고 희망이었다. 망설임 없이 연락하여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시대적으로 너무나 암울했던 시기였다. 쿠데타에 의한 군부가 정권을 잡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억압했던 시기에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누설되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기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선정해야 했다. 나를 이곳에 오게 했던 가장 친한 형님과 동료 두 명, 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필요조건만을 만들어서 추진하기로 했다. 인천에서 찾아온 동생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조합설립에 필요한 서류 및 회의 자료, 그리고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을 선출하여 임원 구성을 하고 군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 절차만을 남겨 두었다.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던 내가 어느 순간 노동운동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가슴 가득 노동해방을 꿈꾸고 있었다. 어렵게 꾸려진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들고 군청으로 방문하여 접수를 마치는데 정말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였다. 설립 신고 필증은 3일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여 회사로 돌아왔는데, 그로부터 온갖 협박을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현장 간부 한 사람은 나를 찾아와서 도끼로 골통을 빠개버린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최고 열성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 하지만 3일이 지나도 군청에서 연락이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였다. 모든 조합원들을 동원하여 군청 군수실로 향했다. 삼십여 명의 조합원들은 군수실 복도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딱 한 가지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기만 했다. 이미 회사는 초비상이 걸리고 사장도 군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군수님은 자리를 비우고 연락이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물러설 우리가 아니었다. 속히 연락하여 들오라고 요청을 하였고, 결국 우리는 하루 종일 힘든 싸움을 통해 신고필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신고 필증 사수였다. 회사로 복귀하는 동안 누군가 필증을 탈취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몇 팀으로 나누어서 회사로 복귀하였다.      


  회사 정문을 들어서면서 우리는 환호하였고 회사 사장도 수고했다고 빈말이겠지만 축하를 해 주었다. 모든 순간순간이 정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이 긴박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작업 현장에서 노동조합 설립 보고대회를 마치고 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산적해 있는 많은 일 들을 눈앞에 두고 또다시 긴장해야 했다. 왜냐 하면 우리 회사 사장은 지역사회 또는 정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회사는 실질적 사주는 회장이 있고 경영을 잘할 수 있는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여 운영하는 회사이다. 당시 정치 실세들과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고 지역 관료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도 역할을 많이 하고 있었다. 기업 강연, 군 또는 민방위 강연, 그리고 지역 정치에서 여당 지역구 위원장까지 역임하고 있어서 그 권력의 힘은 막강했다. 그런 대표이사와 교섭을 통해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험난한 길일 수박에 없었다. 힘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 08화 회상 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