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2019년 봄 신인상 수상 소식을 받는다. 다섯 작품을 엄선하여 원고를 보냈고 추천해 주신 시인과 세 분의 심사위원님들이 심사하여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행사장으로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행사장은 조금은 낯설었지만 참석하고 있는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회자의 행사 시작과 인사 그리고 수상자 발표, 상패와 상장 그리고 꽃다발을 받아 들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제 시인으로 등단을 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나 스스로 내가 시인이 된다는 게 가당치도 않았다. 내가 시인이라고? 아마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시를 쓰고 시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다. 전기도 없었던 산골에서 태어나 공부는 뒷전이고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니고, 낫 들고 소 꼴 베러 다니고, 논일 밭일이 일상이었던 내가 공부는 늘 꼴찌에서 맴돌았고 고등학교도 시험에 떨어져 갈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일직 돈이나 번다고 도시로 나가 직장에 다녔다.
그런데 나에게도 기회는 오는 것이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공부를 못 해서 기초적 지식이 없는지라 고등학교 공부도 그리 잘하지 못하고 끝에서 맴돌았다. 그나마 공업고등학교라서 기술을 익히는데 소질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잔잔한 호수에 짱돌 던지는 놈 공고생, 하늘하늘 코스모스 모가지 꺾는 놈 공고생, 싸움을 해도 망치로 꼴통 까는 놈 공고생.” 그것은 공고생들이 교양 교육이 이루어지질 않아서 정서가 메말라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온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메마른 가슴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시를 썼다. 부족하지만 문득문득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서슴없이 시를 써내고 또 배우고 있었다. 그런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시집으로 만들게 되었다. 2021년 80편의 작품을 문단 대표님께 원고를 보내고 시집으로 만들어줄 것을 요청드렸다. 그리고 시집 제목을 “땅으로 별이 뜬다.”라고 지었다. 이유는 내 딸아이가 그 시를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시집 표지에 들어갈 사진도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골라 보내주었다.
얼마 후 대표님께서 시집 표지모델을 사진으로 보내 주셨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그리고 시집 500권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생에 첫 시집이 택배로 보내져 왔다. 내 이름이 새겨진 시집을 손에 들고......
예쁘게 만들어진 시집을 봉투에 하나씩 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들의 이름을 봉투에 적었다. 먼 곳에 계신 분 들은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지인들께 하나씩 들고 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많은 축하를 받았고 어떤 분들은 첫 시집인데 공짜로 받을 수 없다고 책값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 이제 나에게 수식어가 붙는다. 이상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