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부부의 삶

벌써 12년

by 이상배

24년 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 부부가 드디어 주말부부가 되었다.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새롭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인천에서 논산으로 이전하는 모 회사의 협력사로, 우리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유리 제품을 이동 적재 및 출고, 상차 등을 업무로 하는 일이다. 반제품 또는 완제품을 3 Ton 지게차로 운영하는 작업이다. 지게차 일은 내가 거의 평생을 해온 일이다. 그래서 형님도 나를 믿고 맏기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글라스 락 이다. 생활용기라고 하여 주방에서 주로 쓰이는 제품이다. 밀폐식 유리로 만들어 음식에 유해한 물질이 없고 물에 잘 씻기어 음식을 저장하기에 좋은 제품이다. 무게가 조금 무겁긴 하지만 강화유리라 땅에 떨어트려도 깨지지 않아 안전하고 좋은 제품이다. 또 하나는 각종 병을 생산한다. 우리 일상에 많이 쓰이는 음료수 병, 그리고 병원에서 쓰이는 링겔병, 술병, 등등... 색이 안 들어간 병은 모두 만들어 낸다. 논산공장은 무색 병, 천안공장에서는 유색 병을 생산하는 국내 최고의 강화유리제품 제조 회사다.



나는 인원 및 장비를 관리하는 소장으로 취업을 해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집사람은 평생을 떨어져 본 일이 없으니 당연히 안된다고 엄청난 반대를 하고 있었다. 혼자 지내야 한다는 걱정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실은 남편에 대한 집착이 심하게 있던 사람이다. 집에 들어가면 불만 섞인 말로 다투기 일쑤였고, 어쩌다 좀 늦으면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집에 들어오라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누구를 만났냐, 그 사람을 왜 만나냐, 등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듯한 집착 그런 집착으로 사실 나는 매일 숨 막히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이참에 그런 집착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더 강력하게 논산으로 갈 것을 주장했다. 왜냐면, 택시를 하다가 불의의 사망사고로 개인택시의 꿈을 접어야 했고 그 일로 인해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집사람의 눈물을 뒤로하고 나는 논산에서 원룸을 얻어놓고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집사람의 요구로 일주일에 두 번을 천안으로 오르내렸다. 그런데 새벽같이 일어나 논산으로 출근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시간 반을 새벽에 운전하고 출근하려면 왜 그리 졸린지 꼭 중간에 갓길에 세우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가야 한다. 어떤 때는 졸음운전을 하다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이러다 내가 사고로 잘못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 결국은 집사람에게 주말에만 와야겠다고 설득을 했다.


회사 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소위 말하는 갑질이 엄청나게 심했다. 모 회사 직원들은 협력사 직원들 알기를 정말 노예 수준으로 취급하는 거 같았다. 자식 벌 되는 어린 직원이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나는 너무 어이없고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뒤 그 친구는 나에게 아버지라고 하며 잘 따르긴 했지만, 거의 그런 분위기였다. 나는 소위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꼭 60년대 70년대 노동 현장을 보고 있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사실을 절대 들어내지 말라고 당부한 형님 때문에 참아야만 했다. 심지어 나는 꿈에서 공장장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공장장을 때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얼마나 마음에 담아 있었으면 꿈을 그렇게 꿀까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에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었다면 정말 나는 누군가와 싸우고 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군에서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다. 내성적이었던 내가 특전사로 배치를 받아 군 생활을 한 것이 성격이 거칠어진 듯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해결을 해야 했다. 몇 번의 그런 사건을 우리 가족들은 알고 있기에, 그래서인지 형님은 이곳에 오기 전에 나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형수도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 성질에 누구 하나 사고 칠 거 같으니 도련님은 보내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러면서 무조건 참으라고 하셨다. 정말 그럴 때마다 형님이 떠올랐다. 내가 형님 얼굴에 먹칠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위안을 하면서 참고 또 참아냈다.

예전에는 팀장들이 협력사 소장들하고는 말도 안 섞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형님께 말했다. “무슨 팀장이 벼슬이냐고,” 형님도 이곳 팀장 출신이라 내막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지금 회사 팀장들과 늘 식사도 함께하고 골프도 치며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오히려 “상배 소장님이 형님보다 헐 사교적이고 좋다”고 형님께 내 자랑도 해주고 있다. 지금은 대인관계든 회사 업무든 자리가 잘 잡혀서 무리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런 일상적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면 늘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한다. 일찍 들어가 봐야 집 도 아니고 가봐야 싸늘한 원룸 방구석인데 일찍 들어가면 뭐하나 싶어 허구한 날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또 업무의 일환이긴 하나 우리 업무를 담당하는 물류과 직원들과 어쩔 수 없는 로비형 술자리를 많이 해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술이 덜 깨어 비몽사몽이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러다가는 내가 오래 못 살든지 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는 마음을 다진다. 나 자신을 나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작심하고 술과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러나 술을 마시니 또 담배 유혹에 사로잡혀서 이대로는 그나마 또 실패할 거 같아 아예 술도 안 마시는 것으로 선포를 하고 술자리를 피했다. 주변 사람들은 성공하리라 믿지도 않았다. 작심삼일이라며 기대조차 않는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많은 유혹을 참아내며 다짐을 이어같다. 사람들은 조금씩 인정을 하고 이제는 나에게 술도 권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한 금연과 금주가 벌써 십 년째다. 이제는 담배를 물고 누구도 내 옆에 얼씬도 못 하게 한다. 담배 연기를 맡으면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싫어진 것이다. 이제는 흡연하는 친구들에게 금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공간을 나는 건전한 문화생활로 채워 나 같다. 열심히 색소폰 학원을 나가서 악기를 배우고 함께 거리공연도 했다. 지금은 내가 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앙상블 동아리가 이 지역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또 틈틈이 써오던 글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지금도 문화원에서 시 창작 강습을 열심히 듣고 공부하고 있다. 내가 환갑이 되던 해 시집을 출간하여 많은 지인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었다. 많은 공감을 해주고 감동을 했다고 말해줄 때 나는 또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늘 부족함에 가슴은 답답했고 지금도 시 쓰기에 자신이 없다.

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고 배우고 쓰고 지금은 대학을 입학하여 문예 작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술과 담배로 허비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배움의 시간으로도 부족한 시간이다. 일과 학교, 그리고 지역 활동으로 시간들은 채워지고 어느새 지역에서 많은 것을 쌓아 올리고 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가버리고 있다.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고 영상을 만들고 인생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주말부부 생활이 벌써 12년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 집사람이 많이 변했다. 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며 말리던 사람이 이제 주말에 올라가도 별로 신경도 안 쓴다. 있는 거 대충 차려서 먹으라 하고 바쁘게 어디론가 가버린다. 늘 함께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은가 보다. 그렇게도 나에게 집착하더니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았는가 보다. 집사람도 말한다 내가 왜 그리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은 본인도 너무 마음이 편하고 자기를 이해해 주는 내가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 보여서 나도 그런 아내가 보기 좋다.

어느 때인가 일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가면 나머지 시간들은 집사람하고 여행도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작은 캠핑카를 하나 만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악기와 음향장비들을 차에 싣고 이곳저곳으로 여행하면서 돈 떨어지면 사람 많은 곳에서 가방 열어놓고 연주도 하고 집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도 함께 부르고 그런 인생 마무리를 해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주말이면 작은 밭을 가꾸고 있는 농막에 가서 함께 지낸다. 집사람과 함께 작물을 가꾸고 음악도 듣고 마음을 쉬기도 한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아 우리 딸아이도 놀러 와서 함께 지낸다. 떨어져 사는 딸과 아들가족이 자주 찾아와 함께 놀다가니 가족간에 더 사랑이 채워지는거 같아 너무 좋다. 이제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그런 삶이 너무 좋아서 이제 얼른 일 그만두고 돌아오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 집사람 5년만 더 있다가 오라고 한다. 이러다가 아주 오지 말라고 할거 같다고 농담을 던진다. 하긴 아직 일손을 놓기에는 젊은 나이이다. 요즘은 60대는 노인도 아니다. 70은 넘어야 어르신이라 한다. 아직은 건강하니 앞으로도 남은 삶이 요즘처럼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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