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상담
쌍용동 용암마을 아파트에서 중앙 초등학교까지 이동하는 손님이었다. 초저녁 조금 어둑해질 무렵 아파트 앞 택시 승강장에 대기하던 중 승차하신 여성이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은 예쁘장하고 책을 가슴에 품고 택시를 타신 분이다. 행선지를 묻고 출발하자,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뒷좌석에서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기사님 좀 여쭈어도 될까요?” 하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네 ” 하고 대답을 했다. 여인은 조금 망설이다 이내 말을 이어간다. “사실은 제 남편에 대해서 좀 여쭙겠습니다.” “제가 남자들의 마음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 아~ 남편분이 어떤 문제가 있나요?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나 보군요” 하고 말씀을 해보시라고 했다.
여인의 남편은 아마 교직에 있었고 사업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 사업 실패를 겪었다고 했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빛을 지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여인은 가정방문 교사를 하면서 남편의 빚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도 돌보며 힘겹게 일하는데, 남편은 겨우 학원 시간강사를 하면서 낮에는 일도 안 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고 했다. 학원 시간강사로 벌어온 강사료는 얼마 되지 않아 이자를 갚고 나면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술 마시고 들어오면 대화는커녕 싸움만 하게 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다.
천천히 운전을 하며 여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나와 똑같은지요. 지금 하신 말씀은 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내가 사업을 한 이야기 그리고 금융위기로 인해 부도 처리된 어음 회수 그리고 사업을 정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의 초라함과 가정에서의 어려움까지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방법을 제시했다. 짜증 내지 말고 절대 돈 이야기를 가지고 싸우지 말아라.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되는 말들은 금물이다. 다독이고 격려만이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 경험으로 느끼는 것은 지금 남편분은 모든 이야기가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무능함 때문에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그랬다. 집에서 다툼이 생기면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자존심 상했고 지가 돈 좀 번다고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런 생각은 폭력적인 싸움으로 변하곤 했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다툼 그리고 내가 느꼈던 심리적 어려움들을 이야기하고 남편이 말 못 하고 힘들어할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여인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수많은 손님을 대한다. 그러니 손님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금방 파악을 하는 습성이 생긴 것이다. 이 여성분도 택시에 오를 때는 분명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던 여인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여인의 표정은 조금씩 변해 같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택시를 주차하고 시동을 멈춘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드리워지고 작은 미소로 나를 향해 감사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왜 내가 행복해질까. 미소 지으며 뒤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했다. 그녀가 누군지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행복해한 것을 보며 나는 그녀와 함께 행복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나도 그런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힘든 일로 답답했을 때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이 더 후련하고 편해진 것을 경험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내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행복했던 것이다. 아마 내 이야기를 들은 그 여인도 다시 행복했던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가슴에 쌓여 있던 힘든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을 수 있어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있을 그녀가 정말 행복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