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기행
글은 생애의 정류장과 같다는 칼 융의 말처럼, 돌아보니 평생 내가 끄적였던 글과 사진은 사실 내 그림자였고 발자국이더라. 굽이굽이 삶이 꺾일 때마다 적었고 찍었던 것들이 실은 나를 지켜준 삶의 쉼터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3년 전 무작정 혼자 찾았던 늦겨울 해질녘의 구례 화엄사는, 봄과 여름의 경계 가운데 어느 청명한 아침에 다시 찾아보니 내 기억과는 아주 다른 곳이었다. 하도 신기하여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사실 화엄사는 언제고 그대로인데, 3년 전 사진을 남겼던 그 사람만 없어진 것이더라.
언제고 나는 변함없이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매일 해가 뜨고 지고, 내 정신도 죽고 살아나고를 반복하다 보니, 몇 년 사이에 나 또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3년 전 안간힘을 써 남겼던 화엄사의 찰나와 기억이 지금 보니 어찌 그리 청승맞고 촌스러운지. 화엄사에 대한 옛 기억은, 실은 젊고 울적하던 내 과거의 그림자와 다름이 아니었다.
일하던 중, 알람이 울려 힐끗 보니 ‘2년 전 오늘’이 아득히 빈 공간 가운데 떠있었다. 갑자기 찾아왔던 어린 게 하루아침에 없어졌던 그 날이었다. 사진들을 다시 바라보다 까닭 없이 늦은 밤까지 야근을 했다.
떠나던 날 사진들은 맑고도 울적했다. 3년 전 구례에서보다는 어설픈 게 덜해졌지만, 구도도 대상도 주제도 불분명한 사진들이 더러 있었다. 그날 우리 마음은 저랬었구나.
잠깐 생의 정류장 위에 다시 섰다, 그리고 돌아왔다.
나이를 먹어서 편해진 것은,
사진이건 글이건 좀 더 간결해지고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어지간히 기계적이고 빨라졌다. 살면서 응어리진 것이 점점 많아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구례 화엄사의 부처님 오신 날.
세상에 아주 잠깐 다녀간, 이름도 얼굴도 가져보지 못한 어린 것을 생각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그날은 날씨가 하도 좋아 사진 자리를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복된 날,
경내에 수없이 늘어진 연등들의 꽃 자수 가운데, 자비하신 불보살의 손길이 만약 닿는다면.
어느 작은 연등의 한 귀퉁이에라도 우리 그것의 자리가 있었으면 했다. 어린 것의 자리가 어디에 있을지 몰라, 사진 가득히 연등의 무리들을 담았다.
언젠가 다시 화엄사를 찾아 이 날 사진을 찾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이 사진들에 대해 무슨 말을 또 남길까.
어버이날의 전날, 늦은 야근 가운데.
어느새 카네이션을 받아보는 지인들이 올린 앙증맞은 사진을 보다가 문득 떠올라 글을 적어본다.
와보지도 못한 것,
받아보지 못한 것,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마구 뒤섞인 5월의 어느 날.
내가 남긴 글과 사진은
이번 생애의 다시 못 올 어느 정류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