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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Mar 04. 2022

민주주의, 시민을 읽지 못한 푸틴의 오판

합리적 판단을 거친 푸틴이 러시아 침공이라는 오판을 한 이유

필자는 이전에 우크라이나 위기와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 거주하는 동부 지역에 국한될 것이라고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제한적으로 보았던 것은 코로나19의 장기화와 세계 경제의 하락 및 에너지 자원의 상승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나토의 동진이 분명 러시아에게는 위협으로 인식된다 할지라도, 여기에 속하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마지막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는 한 대외 안보 면에서 중국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현 상황 상, 서방과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이 회피될 것이라 보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예상을 빗나간 것은 이러한 요인들로 러시아의 침공이 최대한 억제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빗나간 예상은 간단히 말해 국가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전제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말은 푸틴이 정신이 나갔거나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다. 러시아라는 국가와 푸틴은 여전히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이성적 존재이다. 단, 푸틴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게 된요인들에 대한 이해가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요인들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하게 된 요인들에 있어서 푸틴의 오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믿음의 오판


첫 번째는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에 관한 것이다. 푸틴은 천연가스 공급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가졌던 듯하다. 러시아가 공급하는 가스관은 원래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육로에 설계되어있어, 가스관 경유에 대한 비용을 각국에 지불해야했다. 2012년 러시아는 노르트스트림2라는 발트해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독일까지 직접 가스를 공급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럽 각국의 에너지 의존도를 더욱 높여 경제적 연계성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유럽과 미국을 분열시키려는 러시아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보였다. 노르트스트림2 공사 초기부터 미국은 반대의사를 보였지만, 2021년 가스관이 완공되어 독일 정부의 환경영향평가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값싼 에너지 자원으로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민들에게 난방비를 저가에 공급할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 앞에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최소 40% 이상인 독일은 2월 초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위기에 눈을 감았다. 이 사업에 참여한 여러 기업들의 존재와 산업에 미치는 타격을 고려해서라도 함부로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러시아의 행동에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헬멧 5천개 만을 지원하며 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보내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Photo by SamuelFrancisJohns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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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들고 일어난 것은 독일 시민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에 전 세계 시민들이 반대를 외치는 흐름 속에서, 베를린에서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쇼츠 총리의 소극적 태도는 이전 메르켈 총리가 보였던 유럽을 주도하는 독일의 강력한 리더십과 대조되었고, 정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독일 정부는 2월 말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첨단 무기와 전차, 석유 지원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또한 독일은 2월 22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서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중단했다. 유럽에서 가장 소극적일 것 같았던 독일이 가장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이다. 여기에 중립국 스위스까지 EU의 제재를 채택하였고, 군사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무기지원에 나섰다. 푸틴의 오판은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유럽의 민주주의 체제였다.


크림반도에서 얻은 자신감, 과거 경험에 대한 오판


둘째는 러시아의 경제적 기본 체력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11위의 GDP를 자랑하지만, 영토의 크기와 산업구조를 보면 다소 취약한 부분이 있다. 10위 대한민국의 경제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 배터리, 의약품 등 다양한 산업의 융복합으로 성장동력을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다(한국은행 자료)  러시아의 경제는 에너지 자원, 특히 석유와 가스의 생산 및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가 국민들의 지지 기반을 쌓은 것도, 지지가 하락하는 것도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의 개선 및 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세계 에너지 자원 가격 동향이 곧 국가 경제의 환경과 푸틴의 정치적 위상 및 안정과 연결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점에서 푸틴은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던 듯 하다. 2015년 이후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9년 이후로는 4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GDP 대비 정부부채는 20%도 되지 않으며, (대한민국은 66%, 유럽 국가들은 약 100%) 코로나19를 거치며 공급망 악화와 급속히 높아지는 원자재 수요는 러시아의 자원 가격을 크게 상승시킬 요인이 된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를 견디며 기초체력을 쌓았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서 러시아의 침공과 제재 가능성이 등장하자마자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관련 주식이 치솟았다. 에너지 자원 수급 문제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급속한 인플레이션으로 정권의 지지까지 위협 받는 현 시점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기에 금융 제재에 비해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수입 중단 조치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시나리오였다.


필자는 이 때문에 푸틴이 전쟁을 일으키면 서방의 제재로 인한 대외교역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침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택하더라도 제재를 견딜만한 기초 체력과, 세계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강도가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푸틴은 기회로 본 듯 하다. 물론 이 모든 전제는 크림반도 때처럼 우크라이나를 빠르게 침공하여 승리를 거두고 목표한 영토를 빠르게 점령하는 것이었기에 결과적으로 푸틴의 오판이 되었다.


더불어 세계적인 반전 여론과 러시아 침공에 대한 비판은 예상보다 빨리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노력에서도 나타났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운송 과정에서 군사적 이유로 중단되거나 선박이 파괴될 수 있고,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비쳐져 사업상의 리스크를 키운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수출 업체들이 원유 가격을 할인해도 구매하는 업체가 줄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산 원유로 갈아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정유업체들이 공식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을 밝혔으며, 최근 미 의회에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시기 적극적인 셰일오일의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원유 가격이 매우 낮아 막대한 적자를 남겨 기업들이 파산에 이르기도 했다. 오히려 지금이 미국에게는 셰일 혁명의 수혜를 받게 될 가능성마저 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푸틴의 오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핵심 가치로 공유하는 현 시대 국제 무역 질서이다.


자국에 대한 오판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강도가 높아졌다. 침공 이후 미국이 발표한 가장 큰 제재 중 하나는 러시아를 SWIFT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전자 메시지 시스템으로 세계 11,000여 개의 금융기관들이 활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의 자금거래와 유동성에서 제거된 것이다.


미국와 유럽은 국제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퇴출시켜 금융 고립을 현실화하려 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러시아에 있는 자산을 처분하고 루블화를 달러나 자국 화폐로 환전을 해야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루블화는 30% 가까이 급락했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제재로 인해 급락이 예상되는 러시아 증시는 열리지도 않고 있다. 제재로 거래가 중단되면 러시아 기업들은 수출 및 거래가 금지되고 대금도 받지 못하며 은행 대출도 상환하기 어려워지기에 사업상의 어려움이 커져 파산 위기에 몰린다. 러시아 은행들은 기업의 부채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추가 대출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로써 유동성이 악화된다. 루블화 가치 폭락 혹은 상실은 일반 시민들의 구매력이 하락하거나 소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기업 상황의 악화는 고용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유출은 물론이고 현금 확보를 위해 시민들은 ATM으로 몰려갈 것이 뻔하며, 이는 실제 현실이 되고 있다.


Photo by Valery Tenevoy on Unsplash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인상했고,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 이자 지급, 증권 매도를 금지시켰으며, 거주자의 해외은행 자금 이체를 제한시켰다. 루블화의 가치가 추락하고, 제재로 자원 수출입이 어려워져 대금 결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고, 물가는 치솟을 예정이다. 러시아 국민들의 가혹한 고난의 행군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제 여건의 개선으로 지지를 얻고 강력한 러시아의 부활을 선언했던 과거와 똑같이, 러시아 국민은 앞으로도 푸틴을 지지할 수 있을까? 반전시위가 러시아 내부에서 이미 발생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푸틴의 오판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였다.


파트너의 한계, 중국에 대한 오판


러시아의 또 다른 자신감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이다. 지금와서 보면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 푸틴과 시진핑의 정상회담과 공동성명 발표는 적어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 중국과의 사전 포석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양국은 미국이라는 공동의 극복대상을 두고 경제협력을 약속하였으며, 러시아는 대만독립 반대를, 중국은 나토의 추가 가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며 서로를 지지해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공산주의 진영 하에서 소련과 중국은 서로를 비난했으며, 대륙의 두 문명은 너무나도 큰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언제나 충돌할 가능성을 보였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국은 중국을 공개적으로 겨냥하여 제재 위반 시 중국에게도 제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의 여러 국영은행에서 러시아 원자재 수입에 대한 대출 중단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인터넷 상에서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관점을 보이는 중국에 대한 세계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중국은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그리고 UN 총회에 상정된 러시아 규탄에 대한 결의안에 중국은 '반대'가 아닌 '기권'표를 던졌다. 푸틴이 오판한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 보편적 가치가 중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판


오렌지 혁명과 유로마이단 혁명을 거친 우크라이나는 많은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친러와 친유럽으로, 동과 서로, 경제적 양극화로 갖가지 분열적 현상이 뒤범벅되어 내우외환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부패에 시민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행동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세우는 주역이 되었다.


현 대통령 젤렌스키의 등장은 1991년에야 등장한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00여 개에 달하는 다민족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갈등 요소를 안고 있지만, 거꾸로 공존과 조화를 위한 많은 의식적 노력을 필요로 하며, 우크라이나인이라는 동질성을 가진 정체성과 역사관을 확립하여 분열상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가난한 다수의 국민은 친러-반러의 분열적 구호로 권력을 얻어 경제적 이익을 독점한 억만장자 엘리트가 아닌, TV 프로그램에서 자국의 현실을 개탄하고 부패한 정치에 쌍욕을 날렸던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정치적 위기에 자국을 탈출한 과거 엘리트 대통령과 달리,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 경험이 전무한 비전통적 지도자에 우려 섞인 시선과 달리, 그는 키예프에 남아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며 결사항전을 독려하고 있다. 모순과 혼란의 현실에 변화를 외치며 국민들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한 민주적 권력으로 만들어 낸 대통령의 존재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저항의 상징이 되고 있다. 혼란의 1990년대 러시아의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를 거쳐 20년 넘게 힘과 권위, 정략으로 유지해 온 푸틴은 굴곡 많은 민주주의의 험난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오늘의 우크라이나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푸틴의 오판은 사연 많고 탈도 많은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적 성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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