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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Jan 29. 2022

우크라이나 사태의 다른 시선 - 신유라시아주의와 한반도

우크라이나를 보며 한반도를 생각하다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지속되었던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은 9천 명 사망, 2만 명 부상, 120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는 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Photo by Max Kukurudziak on Unsplash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첫째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의 주 목적은 푸틴 행정부의 국내 정치적 안정을 위해 대외 불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해석은 매우 전통적인 해석이라 뻔해 보일 수 있지만, 꽤 설득력은 있다. 이것은 임진왜란의 원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 통일 후 권력 강화를 위해 다이묘들을 대거 조선 침략으로 내몰았다는 해석과 비슷한 것이다.


둘째는 서구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는 현실주의적, 지정학적 분석이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안보 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으로 러시아 역사의 기원에 있는 키에프(우크라이나 수도)까지 친서방으로 넘어간다면 러시아에게는 위협 의식이 되어 그것이 군사경제적 대응으로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셋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정치 제도의 차이가 야기한 충돌이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는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지만 러시아는 권위주의로 기울었다. 두 인접국의 다른 정치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경험이 현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구조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위협론인 것이다.


넷째는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대외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시리아 공습 등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신속한 개입과 철수가 러시아의 군사력과 대외적 위상을 강화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에 이어 2022년 또 다시 불거지는 분쟁은 어떻게 일관성 있게 볼 수 있느냐이다. 국제 질서를 보는 인식의 틀에서 차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과 결과라는 본질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또 다른 관점 - 러시아의 신유라시아주의


이에 대해 한 가지 제시되는 해석은 러시아가 다른 세계와 구별되는 문명적 정체성이다. 19세기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라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제국의 팽창의 이념적 기반을 쌓았다. 이것이 당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발칸반도에서 독립운동의 동력으로 결합되어 범슬라브주의에 호응하게 되었다. 민족을 내세웠던 러시아의 팽창은 공산주의를 내세운 소련의 팽창으로 옮겨졌다.



Photo by Sam Oxyak on Unsplash


소련 시기 팽창은 유라시아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동양을 주목하지 못한 범슬라브주의를 반성함과 동시에 서구와 구분되는 러시아의 지리적, 문화적 특수성과 국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합이나 구분이 아닌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제3의 문명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중원의 문명을 중심으로 주변을 오랑캐로 보았던 중화주의를 생각하면 연상하기 쉬울 것 같다.


유라시아주의는 현재의 국가의 정치적 영역을 초월하는 문명의 영역을 강조한다. 그 문화적 경계는 지리적 경계에 따라 형성된 문화이며, 따라서 현재의 국경이 아니라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문화적 동질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문명의 영역에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한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전의 소련과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통한 재건이 새로운 러시아의 열망으로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신유라시아주의의 등장이다. 이전 유라시아주의와 달라진 것은 국가주의를 달성하는 방식이 공산주의적 이념이 아닌 유라시아 문명에 대한 정체성의 재확립이었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러시아 정교회이다. 푸틴이 핵무기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바로 민족과 언어가 다양한 러시아를 단일한 정체성으로 통합시키는 매개체가 종교였던 것이다.


같은 기독교적 배경이라도 정교회에 의한 러시아 정체성은 서구의 것과는 다름을 강조한다. 개인, 소비, 쾌락의 서구 문화를 제거하고 국가에 의한 공동체적 정체성이 기독교적 정신의 회복이라 말하는 것이다.


정신 세계로 무장한 러시아의 목표는 당연히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의 목표와 다르지 않다. 소수 민족과 지방의 문화적 특수성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지역 단위로 구성해 새로운 러시아 연방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적어도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러시아의 문명권으로 보는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이나 나토 가입은 문명의 충돌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에게 유럽은 주적이라기 보다는 경계를 구분하는 다른 문명이다. 석유와 가스를 서방에 공급하는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다. 그런 점에서 나토의 동진(구소련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미국과 유럽(독일)의 입장을 구분해서 보고 유럽연합에게는 강온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다른 국제 정세 인식을 활용해 러시아는 유럽을 중립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분석도 이런 점에서 있는 것이다.


미국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개입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조금 더 우세한듯 하다. 냉전 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 대외 정책의 집중은 걸프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으로 대표되는 중동과 테러와의 전쟁이었다면, 2010년대부터 오바마의 아시아재균형 정책, 트럼프의 미중무역전쟁과 같이 중국 및 동아시아에 대한 집중으로 옮겨갔다. 우크라이나 동부 등 일부 지역에 제한된 확장 욕구를 보이는 러시아보다 미국에 대한 더욱 확실한 도전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의 정책 중심이 옮겨갔다.세계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와 중국의 목구멍에서 군사 지원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대만과 미국의 최근 밀월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의 운명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걱정스럽다.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수행,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중심의 전력 조정 등 냉전 후 주한미군의 성격은 북한과 한반도 사태에 대한 대응보다는 미국의 주요 대외 정책의 집중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었던 사드 배치와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 미중무역전쟁 속에서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운명의 순간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한반도가 국제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전쟁터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에 개입한 명과 일본은 벽제관(파주) 전투 이후 휴전협상을 진행했다. 이 때 일본은 조선의 남부를 일본의 땅으로 인정할 것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남북으로 조선이 분열될뻔한 상황에서 조선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노력으로 조선이 절단나는 상황을 피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판문점(파주)에서 미국과 소련의  협상으로 한반도는 둘로 쪼개졌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운명이 우리에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다고 보인다면 이 글의 의도는 충분히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날 거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세계 경제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 보지 않는 것이다. 단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러시아가 유라시아주의를 통해 끊임 없이 언제나 대외적 팽창을 시도할 것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문명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이 종교와 결합하여 러시아가 이전의 제국이나 소비에트 연방보다 더 강력한 패권 국가로 진화할 것인가 이다.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면 결국 지금의 가장 큰 갈등의 진원지는 동아시아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우크라이나와 같이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우리는 어떤 선택이 주어져 있을까?


참고문헌

김선래, 2015, "우크라이나·러시아 에너지 갈등과 우크라이나 사태", Acta Eurasiatica, 6, pp. 37-62.

김성진, 2015/2016 겨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정책과 유라시아주의", 중소연구, 39(4), pp. 245-285.

온대원, 2015,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러시아 관계", JPI정책포럼 세미나 발표자료, No. 20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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