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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Jan 30. 2022

부동산, 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제도에 달려있다

부동산과 민주주의


이제 부동산 뉴스를 보면 자괴감과 분노를 넘어서, 허탈함에 집 하나 때문에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되묻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대출로 집을 산 사람도, 대출은 꿈도 못꿔서 무주택자로 남아 있는 사람도, 아무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도, 내 몸 하나 거할 공간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시대적 환경이 낳은 특이한 현상이다. 오죽하면 영혼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말이 등장하게 됐을까.


한 사람, 혹은 가족 전체의 삶을 수십 년간 저당잡히게 하는 집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 문제인걸까. 당연히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순수하게 월급만 착실히 모아서 대출 하나 끼지 않고 10년 안에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를 생각하면 단연코 정상이라 볼 수 없다.


영혼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되는 싱가포르의 주택 구매


자가 보유율이 90%에 육박하는 싱가포르가 참고할 만한 예시가 될 것이다.(이미 언론에 조명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론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은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의 접근 방식, 즉 주택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Photo by Seth Merlo on Unsplash


첫째, 싱가포르의 토지는 대체로 국가의 소유이다. 국가가 토지 소유권을 가지고 99년 같은 임대형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 따라서 아파트 건설에 막대한 토지비를 개인에게 부담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민간주택보다 분양가가 45%정도 낮게 책정된다고 한다.


둘째, 공공주택의 시세차익을 전면으로 차단한 것이다. 거주요건을 채운 거주자가 공공주택은 개인간 거래가 불가능하며, 한국의 LH에 해당하는 HDB(주택개발청)에만 판매할 수 있다.


셋째, 공공주택의 상속을 금지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국가의 토지를 임대하여 거주권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부의 되물림 형태로 상속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넷째, 공공주택의 거주 편의성이다. 중대형 평수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형태로 거주 편의성을 높인 것도 있지만, 1인가구를 위한 아파트도 외곽지역에 한해서 3룸(방2+거실 형태로 약 18평) 구매가 가능하다.


다섯째, 재원 확보이다. LH의 자본금이 정부의 지원 형태로 된 것과 달리, 싱가포르의 HDB 자본금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지 않는다(!!). 국민의 저축, 즉 연금기금으로 공공주택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공공주택을 구매할 때, 개인은 자신이 적립한 연금을 출금해서 아파트 구매 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쉽게 말해서 내돈내산이다.


여섯째, 주택의 규제대상 구분이다. 공공주택에는 꽤나 까다로운 거주요건과 소유권에 관한 규정이 분명하지만, 민간주택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민영주택의 분양가까지 규제하는 한국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접근인 것이다.


주택 문제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살려내야


싱가포르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주는 여러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첫째, 국민의 거주의 자유를 늘리는 방향에 대한 고려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싱가포르와 같이 토지 전체를 국유화하는 것은 사회 통념에도 맞지 않으며, 해결할 수 없을 치명적 갈등이 될 것이다. 단, 적어도 국가 소유의 공유지에 한해서는 싱가포르 모델과 같이 영구적 임대 형식으로 주택 공급을 실험해볼 수 있다. 싱가포르와 같이, 토지비가 빠지는 아파트 값은 대한민국에서도 45%정도 저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서민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면서 공공주택의 분양가가 적정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분양원가까지 공개되면 더더욱) 주변 민영주택과의 분명한 가격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주택의 적정 가격에 대한 심리적 인식을 공공주택이 견인하는 토대가 된다. 더불어 시세차익과 증여로 나타나는 불로소득과 상속이라는 부의 불균형 대신 거주의 자유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공공주택의 기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국민이 국가의 소유를 개인의 소유로 하지 않아도, 주택을 점유, 사용할 권한을 합당한 대상에게 고르게 부여할 수 있는 헌법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공공주택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재설정이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공공주택 보급을 확대하고 제도적 개선을 이어 온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기업의 자본주의적 이윤 창출에 집중되지는 않은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의 공공주택 정책과 시행을 이끌어가는 곳이 가장 문제적 집단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시에서 공개한 아파트 분양 원가공개를 보면 실제 분양가는 분양 원가의 30%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서울의 84제곱미터 아파트 기준으로 분양가가 약 6억 3천만원이었던 원가는 약 3억 9천만원이라는 의미이다. 신도시 개발 예정지의 토지를 미리 구매하여 왕버드나무를 심는 관료의 행태는 분명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일대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시장성과 공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공공주택에는 전면적 규제를, 민영주택에는 전면적 자유를 허용하였다. 개인의 여건과 선택에 따라 주택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과거부터 현 정권까지 주택 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분열과 시장-정부의 갈등은 제도가 미치는 영역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민영 주택의 분양가 공개까지 의무화하다가 그것을 폐지하고, 분양가 상한제는 지역에 따라 선별적으로 설정하는 등의 정책의 널뛰기가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공공주택과 민영주택에 대한 제도를 구분하여 접근하는 정책 접근이 이루어진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적 가치와 국가의 공공성을 함께 살리는 현대의 실리적인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과도 부합할 수 있다.


Photo by Krzysztof Kotkowicz on Unsplash


마지막은 주택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다. 주택이 투기 수단이 되면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알지만 현실상 부정하는 사실이지만) 부를 축적할 정당한 도구는 주택의 시세차익이 아니다. 시세 차익에 집중한 주택 가치는 우리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집이 돈의 가치가 아니라, 주거공간이어야 한다. 아파트 청약과 구매를 고려할 때, 벽과 지붕과 바닥이 어떻게 설계되어있고, 얼마나 튼튼한지, 어떤 자재를 썼는지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고, 층간소음으로 이웃끼리 칼부림이 나는 것은 아파트를 효율적이면서도 함께 사는 공동체의 쾌적한 주거공간이 아닌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공간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의 문제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더해서, 주택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종합건설사와 업체들의 사업 관행, 개발 수익에 숟가락 얹는 수 많은 투자자들, 진실을 분별하기 어려운 투기장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우리들 마저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거할 곳은 누군가의 평생의 노동으로 모은 돈이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부적절한 이익 취득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가치를 살려내는 힘은 국민에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에,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합리적 가치를 반영하는 제도에, 민주주의에 있다. 주택 시장의 긍정적 진화는 똑소리 나는 국민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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