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증후을편종 (2025년 등재)

기원전 5세기, 중국 고대 음악이론을 악기에 새기다

by JS

진시황릉의 스케일에 가려져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78년 여름, 중국 고고학과 역사학의 큰 족적을 남긴 발굴이 있었다.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교외에서 전국시대 초기 증나라 (또는 수나라) 제후의 묘가 발견된 것이다. 이 무덤의 발굴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군 지휘관이 발견하여 발굴요청을 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가 몇 차례 요청 끝에 이루어진 우연한 발견이었다.


부덤에는 정교한 청동 제사용기, 옻칠 목그릇, 금은그릇, 진주와 옥그릇, 악기, 마차와 말, 무기와 복식, 비문과 문자 자료가 다량 출토되었다. 무덤의 매장 연대와 매장된 주인의 신원도 분명하며, 유물의 수와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고고학 발굴 역사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무덤은 증나라 제후 을의 묘라는 뜻에서 증후을묘(曾侯乙墓)라 불린다. 여러 유물에서 증후 을에 대한 명문이 이를 증거하며, 초나라 혜왕 56년(BC 433년) 증후의 사망에 따라 그를 기리기 위해 혜왕이 편종을 주조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연대까지도 추정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춘추전국의 역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증나라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증나라는 서주(BC 1045 ~ BC 771) 시대 주 왕실의 인척에게 분봉한 제후국으로 전국시대 초기까지 어이지다가 기원전 5세기경에 사라졌다. 증나라의 위치는 춘추전국시대의 강국 초나라의 인접국으로서 양자강 중류의 구리 광산지역을 연결하고 중원으로 나아가는 요충지였다. 기록에 의하면 초나라 무왕 37년(BC 704)에 초-수 전쟁에서 수나라가 대패한 것을 계기로 왕을 자칭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수나라가 주나라의 봉건질서를 뒷받침하며 회수 동쪽 지역을 대표하던 제후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서는 주로 수(隨)라고 표현된 것이, 무덤에서는 증(曾)으로 자주 언급됨에 따라, 증나라와 수나라가 동일하며 두 이름을 혼용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무덤 속에서 발견된 중요한 물건은 바로 악기였다. 지하 세계의 거대한 관현악단처럼 125점에 이르는 악기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편종이었다. 증후을편종(曾侯乙编钟)이라 불리는 이 편종은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위아래로 8개씩 종을 매달아 놓은 타악기로, 뿔로 만든 망치(각퇴)로 두드려서 연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예종 때 송나라로부터 처음 수입되고, 조선시대에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편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후을편종은 중국에서 발굴된 편종 중에서 가장 크고, 무겁고,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편종의 왕'이라 불릴만 하다. 중국 문화예술의 보물이자 세계 음악사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린다. 증후을편종에는 사건 기록, 음표 표시, 음률 명칭 관계를 담은 금박 명문 2,828자가 새겨져 있다. 이 외에도 종의 틀(대들보), 걸이 장식, 종 등에 새겨진 명문을 합하면 총 3,775자이다. 이 내용은 중국 최초 통일 왕조인 진나라 이전 시대, 고대 중국 전국시대 음악사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음악 이론의 귀중한 걸작' 이자 '불후의 고대 음악학 기록'이라고 평가된다.


photo_2025-10-13_13-54-45.jpg 복원한 증후을편종을 이용한 음악 공연 (출처: 중국 CCTV)

증후을묘에서 발견된 편종과 청동 제사용기, 무기와 전차를 합하면 약 10톤의 청동이 사용되었다. 이는 청동기 유물이 가진 복잡하고 정교한 장식 및 새겨진 명문을 포함하여 발견된 양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이다. 여기에는 정확한 음률, 야금기술, 주조기술, 천문학 등 다양한 과학기술과 지식이 담겨진 총체로 여겨진다. 전국시대에 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때에도 청동기 제작은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주조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보이는 부분은 특히 편종의 합금 주조와 음의 관계이다. 고대 기록에도 구리와 주석 일부를 혼합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비율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증후을편종의 발견으로 이 비율은 주석 12~14.5%, 납 1~3%, 나머지는 구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합금방식이 편종의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주석함량이 13% 미만이면 음색이 단조롭고 날카로우며, 16%를 초과하면 편종이 깨지기 쉬워진다. 또한 납은 기본적으로 종소리가 퍼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여, 1.4~2.8%일 때 종소리의 감쇠율이 일정해진다고 한다. 반대로 납의 부족하면 종소리 감쇠 속도가 느려져 소리가 왜곡된다. 증후을편종의 납 함량은 음색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적정량인 것이다.


증후을편종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중원의 상나라와 주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제나라와 초나라 와의 문화적 교류와 흡수를 통해 만들어진 독특한 음률체계가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기록된 명문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음조, 평균율, 조율 체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종을 두드리는 위치 (중앙 및 측면)에 따라 다른 음을 내도록 설계하여 이음(two-tone) 체계를 만들어 냈음을 기록하고 있어 정교한 음악적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청동으로 된 편종의 음은 소위 6률(六律)이라 하는 6가지 음을 사용했으며, 그것이 두 단으로 구성됨에 따라 12음 체계가 진나라 이전 시대에 사용되었다. 전국시대 12음은 이후 동아시아에서 활용되는 12율, 즉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며, 하늘과 땅, 음양을 나타내기도 한다.


증후을편종에 새긴 명문(상감)은 전국시대부터 문자를 예술의 영역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이는 오, 월, 채, 초나라 등에서 글자 획이 더 구불구불하거나 점을 추가하여 장식처럼 사용하여 글자가 서예로 발젼했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증후을편종에 새겨진 글자는 글자체가 가늘고 필획이 유려하며 글자의 배치가 질서정연한 특징을 가지며, 이는 전국시대 초기 초나라 청동기 글자와 양식이 유사하다고 한다.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 편종은 세계의 기억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참고문헌

LIU Yutang, ZHANG Shuo. 2006. The Chime Bell of Zenghou Yi & Achievement of Ancient Chinese art and Science. Wuhan University Journal (Humanity Sciences).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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