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친근하며 영혼을 살피고 성찰하는 이상주의자
2009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도서관, 대학, 언론사 등에서 제시한 도서추천목록을 분석해 발표한 세계 100대 명저 중 1위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2위를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 61위에 <동물농장>을 선정했다. 순위보다는 문학적 특성, 독창성, 역사문화적 중요성 및 세대를 걸쳐 독자들에게 읽힌 매력 등 다방면적 가치를 고려한 리스트라는 점에서, 동일 작가의 작품이 두개나 선정된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세계인들의 공감을 만든 오웰만의 탁월한 문장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일 것이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오웰의 기록은 문학작품 외에도 언론인으로서의 기사도 포함되어 있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오웰 기록물에 대한 세계적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불의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특히 수필과 저널리즘을 통해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21세기인 지금도 시사 분석에는 오웰과 그의 아이디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적혀 있다.
더불어 그의 대표 작품인 <1984>에 대해서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문서에는 특별히 "언어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소설의 필수요소로서 나타나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는 실제로 1945년 수필 <당신과 원자폭탄>에서 미래 세계를 '끔찍하게 안정적인 시대'라는 모순으로 "이웃 나라를 정복할 수 없으면서도 영구적인 '냉전' 상태가 팽배할 세계관, 신념, 사회 구조"를 예측하였다. 20세기 후반기를 특징짓는 냉전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그 단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권위주의 지도자를 상징하는 '빅브라더'와 대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시대를 표현하며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남긴 <1984>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로 조지 오웰은 그의 필명이다. 영국인이지만 그는 인도 뱅골에서 태어났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그곳에 그의 아버지가 인도정부 아편국 하급관리로 있었기 때문이다. 5살까지 인도에서 살다가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갔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를 세인트 시프리언스 사립 예비학교에 입학시켰다. 명문고, 명문대를 거쳐 고위 관료로 가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로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만 갈 수 있었지만, 명문고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똑똑한 아이들을 장학생으로 입학시키는 제도의 덕을 본 것이다.
그의 인생은 이 때부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글처럼 어둠과 우울함이 가득했던 그의 시대와 인생에서 첫 단계였던 이 학교에서의 시간을 '악몽'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그러하다. 서로 누가 더 부자인지 경쟁하고 자랑하며, 학교 선생들은 가난한 학생을 무시했고, 오웰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대중적 스포츠 크리켓은 야구처럼 공을 치기 위한 방망이가 필요했다. 방망이가 없었던 오웰을 가리켜 교장은 "너희 부모는 그것을 살 능력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평소 기관지염이 있었던 그에게 "너의 숨소리는 아코디언 소리와 같다. 늘 먹을 것만 밝히니 그런것"이라며 모욕을 주었다. 학교 급식이 비싸고 음식을 사먹을 수 없는 학생들은 굶은 채로 수업을 듣는 것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오웰의 학교생활 중 가장 최악의 경험은 아마도 체벌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과 무관하게 부모의 연 소득에 따라 체벌여부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은 오웰에게 권력이 가진 무자비함과 비정함을 몸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문학작품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이후 오웰은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다. 1440년 영국 왕에 의해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학교가 변질되어 당시에는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하여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하는 입시 루트로 여겨졌다. 이 학교는 특히나 체벌로 유명하여 채찍으로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보리스 존슨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영국 수상만 20명을 배출한 명문이지만, 이 학교를 다녔던 윈스턴 처칠마저도 교사와 사감들에게 맞느라 고통스러웠다고 밝혔을 정도이다. 상류사회의 보수성과 특권의식을 대표했던 이곳에 다니는 것은 어머니의 바램이었지만, 결국 오웰은 이 학교를 끝으로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근무했던 식민지 인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