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오웰 기록물 (2017년 등재) 2

정의롭고 친근하며 영혼을 살피고 성찰하는 이상주의자

by JS

영국 사회의 비인간성을 보았던 오웰은 식민지로 향했다. 인도제국 경찰관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모두가 기피했던 버마로 파견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가 근무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예제는 이미 폐지되어 흑인 노예 무역이 금지된 상황에서 인도 출신의 계약 노동자로 노동력을 대체했는데, 이들을 쿨리라고 불렀다. 계약 노동이라는 점에서 신분으로는 노예가 아니었지만, 대개 소작농 같은 가난한 계층이 계약서를 읽을 수 있을리 만무했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요건만 갖춘 열악한 환경에서 이들은 고무농장, 사탕수수 농장 등 고된 플랜테이션 노동 속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세에 버마에 도착한 오웰은 영국 경찰이 쿨리에게 발길질을 하며 가축처럼 폭행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들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고, 오히려 '쿨리는 흑인', '인간과 다른 종류의 동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은 '미개한 민족의 언어'인 버마어를 배우고 힌두어를 배우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버마인과 친근하게 지내고 인도인과 인간적 소통을 하는 그를 당대의 시각에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그 조차도 스스로가 모순에 빠져있음을 발견하고 각성하여 작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계기가 나타났다. 그가 쓴 <교수형>이라는 에세이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관할 감옥에서 인도인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30미터 정도 되는 교수대를 사형수가 걸어가는데 그 앞에 웅덩이가 있었다. 사형수는 아무런 의식없이 웅덩이를 피하려 발길을 옮겨 디뎠다.


photo-1557422901-009273bc323c?ixlib=rb-4.1.0&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fm=jpg&q=60&w=3000 사진: Gavin Van Wagoner (Unsplash)

이 장면은 오웰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

단 몇 분의 삶도 남지 않은 사형수는 왜 고작 웅덩이를 피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가?

이 장면에 내내 잊혀지지 않았던 오웰은 <교수형>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 정신이 멀쩡하고 건강한 한 인간의 생명을 파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식민지인과 스스럼없이 지냈던 그 조차도 '대영제국인'으로서 사람을 구별해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늘 아래 만인이 평등하며,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다고 배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있다.


오웰은 그 깨달음을 이렇게 남겼다.

"어떤 생명에도 높낮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갈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


이 깨달음은 오웰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죄의식에 관한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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