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볼란디스트 기록물 (2025년 등재)

현대 연구방법의 기원을 열어간 가톨릭 성인들의 행전

by JS

16, 17세기 당시 벨기에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였다. 주요 도시인 앤트워프는 가톨릭의 반종교개혁과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요 거점이었다. 16세기부터 종교개혁의 확산에 대응하여 일어난 반종교개혁은 가톨릭의 부흥을 위해 (개신교가 비판했던) 면죄부 판매, 무지한 성직자, 사치 등 교회의 위계질서, 부패, 세속주의 전반에 대한 해결에 나선 개혁운동이었다.


이러한 반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것은 예수회(Jesuits)였다. 1540년 설립된 예수회는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바탕으로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유럽 전역에 학교와 대학을 설립하고 인도, 중국, 일본 등 세계 선교활동을 주도하여 기독교를 전파했다.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한 마테오 리치도 대표적인 예수회 선교사였다. 이러한 예수회의 활동은 신학 외에도 대학을 통해 천문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 신앙과 학문의 발전에 수백년 동안 주거공간, 안전, 도서관 등 지식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종교 분야에서 큰 이력을 남긴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과 사상에 대한 많은 영감을 준다.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고승전과 같이 중세 이후 유럽 기독교에서도 성인전(hagiography, 聖人傳)이라는 형태의 기록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기록들은 정사(正史), 향토사와 함께 당대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반종교개혁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한 예수회의 성인전은 전설 이야기와 같이 묘사된 성인을 숭배하는 미신이라 강력하게 비판한 개신교와 대척점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7193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03dIlMFXk4zYsBb1cO14%2F0hkXg%3D 장 볼랑 (출처: 위키피디아)


벨기에 플랑드르 출신의 예수회 사제이자 신학자인 장 볼랑(Jean Bolland, 1596-1665)은 1612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마스트리흐트와 앤트워프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한 후 인문학을 가르쳤고 1625년 서품을 받았다. 1630년 장 볼랑은 당시 사망한 헤리베르트 로스바이드(Heribert Rosweyde)가 성인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자료들을 검토하여 성인들의 행적을 담은 저서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성인들에 관한 기록의 출처를 찾고 확인하며 자료를 분류하는 이 방대한 작업은 이후 고드프리 헨셰니우스(Godfrey Henschenius)가 함께 참여했다. 그의 도움으로 성인들의 연대기, 관련 지리, 자료의 문헌학적 해석 등이 가능해졌고, 많은 주석과 메모가 더하여 최종 형태가 만들어져, 1643년 첫 두권이 출판되었다.


960px-Allegorie_met_Geschiedenis%2C_Geleerdheid_en_Waarheid_Titelpagina_voor_Joannes_Bollandus%2C_Acta_sanctorvm_%28..%29_ianvarivs%2C_1643%2C_RP-P-OB-48.109.jpg Acta Sanctorum 1643년 판 (출처: 위키피디아)


1659년에는 다니엘 파페브로키우스(Daniel Papebrochius)가 합류하였다. 헨셰니우스와 파페브로키우스는 사본을 수집하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지역을 직접 여행하였다. 이렇게 기독교 성인들의 삶을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비판적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고, 일차 자료와 역사적 맥락을 활용하는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성인들에 대한 백과사전인 성인행전(Acta Sanctorum)이다. 이 과업을 주도한 볼란디스트 협회는 예수회 중심의 학자, 문헌학자, 역사가로 구성되었으며, 장 볼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장 볼랑 사후에도 볼란디스트 협회를 통해 수 세기에 걸쳐 성인행전이 집필되어 1794년까지 53권을 출판하였다.


개신교의 비판과 같이 미화되고 신화 또는 미신같은 묘사에서 벗어나 장 볼랑의 성인전은 역사 비평이라는 선구적 위치를 확보했다. 원본 문서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함은 물론, 출처가 의심스럽거나 전설에 의존하는 내용은 폐기하기도 했다. 이는 엄격하고도 검증 가능한 학문적 기반에서 성인들의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제기한 신앙 및 지적 도전에 대응하여 가톨릭의 학문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기록물이 가지는 세계적 중요성은 6만 페이지에 달하는 대형 책의 출판은 방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출처와 색인이 포함된 새로운 구성과 편집 방법이 도입되어 역사에 대한 비판적 연구방법을 구현해낸 것에 있다. 이러한 근대 학문 연구 방법의 근원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연구방법 시도가 기독교라는 종교 분야, 성직자에게서 시작하였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성인행전 1,2권은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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