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이상주의자의 독특한 시도
1860년 알베르 칸(Albert Kahn, 1860-1940)은 프랑스 바랭(Bas-Rhin)의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우리가 흔히 알자스-로렌으로 알고 있는 알자스 지역에 속한 지역이다. 1871년 독일이 알자스-로렌을 합병하자 칸의 가족은 프랑스 북동부로 이주하였다. 1879년 칸은 은행원이 되었지만, 야간에도 쉬지않고 공부하였고 지식인 동아리에 참여하기도 했다.
칸은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1893년 그는 넓은 부지를 매입하여 영국식, 일본식, 장미정원, 침엽수림 등 다양한 정원 양식을 아우르는 독특한 세계의 정원(Les Jardins du Monde)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로 모아 마치 서로 다른 현실이 완벽한 조화 속에서 공존하는 화해된 세계의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지구의 기록'(프랑스명 Les archives de la planète)은 1909년부터 1932년까지 전 세계의 인류 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이 사진 컬렉션은 자선 은행가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알베르 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이 기록은 50개국에서 183,000미터의 필름과 72,000장의 컬러 사진이 촬영된 세계 최대 규모의 오토크롬 사진 컬렉션이다.
그는 사람들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오토크롬과 필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 관습, 일상을 사진기록으로 남겨 인류애와 국제적 연대를 함양하는 시각적 자원을 만들고자 했다. 세상 곳곳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 노력은 곧 지식을 통해 평화를 증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 것이다.
(오토크롬 기법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것으로 네거티브가 아닌 유리판에 인쇄된 컬러 포지티브 필름으로 복제가 불가하다는 점에서 각 필름은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이미지가 된다. 사진의 색은 빨간색, 녹색, 파란색 등으로 염색된 감자 전분 입자로 된 미세 모자이크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특성으로 오토크롬은 부드러운 포커스를 가진 아름다운 그림 같은 모습을 띤다.)
알베르 칸 운전기사와 함께 세계일주를 시작하여 브라질, 스칸디나비아, 발칸반도, 북미, 중동, 아시아, 서아프리카를 탐험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주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민족 간 긴밀한 유대감을 위한 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1912년부터 지리학자 장 브뤼네(Jean Brunhes)의 과학적 지도 아래 오토크롬과 필름을 결합한 새로운 기계적 기록 방식을 활용하여 인문지리학과 민족학의 교차점에서 시각적인 기록을 생산했다.
이 프로젝트는 "20세기 초, 우리가 목격한 가장 완전한 경제, 지리, 역사적 변혁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살아 숨쉬는 인류의 기록"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면서 칸은 '하나의 작은 지구(행성) 전체'라는 개념이 익숙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앞선 시기에 알베르 칸은 '세계 시민'과 하나로 연결된 세상으로서의 지구라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세기 초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계의 거울'로서 사라져 가는 세계의 이미지를 보존하여, 지구촌의 사람들과 문화가 서로 상호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공유 유산'을 만든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는 '세계의 거울'을 통해 갈등을 예방하려는 인본주의적 노력인 것이다.
알베르 칸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던 이 프로젝트는 1929년 주식 시장의 붕괴로 그가 재산의 대부분을 잃으면서 중단되었다. 이 컬렉션은 1990년대 이후 공유 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디지털화되었고,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알베르 칸 온라인 박물관 https://albert-kahn.hauts-de-sein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