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S Feb 06. 2022

우리의 마지막까지 쥐어 짤 세금

수십년 동안 변화를 저항하는 자동차세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하겠지만, 얼마 전까지 자동차세 연납 마지막 날이었다. 언론을 비롯해 곳곳에서 "오늘까지만 내면 9% 할인"이라고 광고같은 광고아닌 광고스런 기사를 쏟아내서 심사가 뒤틀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국가가 참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역사에서 세금을 감면해주는 건 자연재해나 새 국왕의 즉위 같은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보기 드문 일이라 기록에 남을 정도인데, 세금을 매년 할인해준다니! 세종대왕도 하지 못했을 매년 세금할인이란 국가의 따뜻한 '은혜'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올해 자동차 관련 세금 징수가 40조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로 자동차 내수 판매가 급증해서? 아니다. 2021년 국내 자동차 회사 총판매량은 약 143만대로 2020년 160만대보다 8.9% 하락했다. 심지어 작년 내내 자동차 구입 시 지불해야 하는 개별소비세 감면까지 있었음에도 징수액 자체가 늘어난 것을 보면 신차 가격 증가, 중고차 구매 증가, 그리고 자동차 이용량의 증가 등 자동차를 평소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부담하는 세금이 늘었다는 의미이다.


현 자동차세(자동차 보유에 대한 세금)의 문제점을 나열하자면 너무나 많아서, 아주 대표적인 문제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동차의 소유자와 사용자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과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자동차등록증에 나온 소유자가 실제 운전자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실제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포차이거나 명의를 도용하거나 다른 이유 등으로 타인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세는 여전히 소유주에게만 부과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실제 운전자가 자동차를 보유, 운전하면서 내보낼 배출가스의 양, 도로 사용에 대한 정당한 과세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문서 상 소유주에게만 막대한 세금을 걷는 불공평성이 존재한다.


둘째, 자동차의 유형에 따라 과세 기준의 형평이 어긋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세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세액을 곱한다. 1cc 곱하기 세액인데, 1000cc 미만 경차는 80원, 1600cc미만(아반떼 등)은 140원, 1600cc초과(소나타, 아반떼)는 200원 따위이다. 전세계적인 엔진 다운사이징과 터보모델의 개발로 배기량 높은 차 = 고급차 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이다. 아반떼 일반모델과 배기량이 똑같은 1600cc 소나타가 나온지도 이미 10년 전 이야기다. 배기량이 같다는 이유로 아반떼와 소나타가 같은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이다. 더 극단적 사례도 있다. 3천만원짜리 소나타와 8천만원짜리 벤츠 E클래스는 같은 배기량의 과세기준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동차세가 똑같다. 사실상 고가의 자동차를 보유하는 사람에게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상대적으로 저가의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 부담을 늘리는 불평등한 세제이다.


조선일보


셋째, 두 번째 지적과 연관되어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 문제는 전기차의 등장으로 더 큰 모순을 안게 되었다. 기존 내연기관은 배기량으로 계산이 가능했지만, 전기차는 애초에 배기량으로 계산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만원 정도로 구매하는 아반떼의 세금이 29만원, 3천만원 정도의 소나타의 세금이 52만원인 반면, 1억이 넘는 테슬라나 적어도 5천만원 이상인 전기차의 세금은 13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양극화마저 조장한다. 소득이 적은 서민일수록 더욱 가혹한 세금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 저렴한 차량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반서민적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자동차의 구매, 보유, 운행과 전혀 무관한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지방교육세이다. 자동차 배기량에 따라 계산되는 세율이 끝이 아니라 여기에 지방교육세라는 이름으로 30%를 더한 금액을 합쳐야 자동차세가 된다. 자동차의 보유와 전혀 상관없는 명목으로 걷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세금이다.


다섯째, 세 부담이 높으니 체납도 높다. 전국 지방세 체납액 중에서 자동차세는 지방소득세에 이어 가장 높은 순위를 달린다. 주민세, 재산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자동차세 체납은 20% 전후를 오고가며, 주요 광역시 중 한 곳에서는 체납이 40%를 넘긴 곳도 있다. 제도 개선이 없으니 세금의 자연적 저항이 쌓인 적폐가 된 것이다. 


자동차세 부담액은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나라 지방세법과 미국 버지니아주 세법으로 제네시스 3800cc 모델을 계산한 결과, 구매 첫 해 부담액이 한국은 약 98만원, 미국은 87만원으로 1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차령에 따라 세액이 감소하는 부분에서 6년차에는 한국 87만원, 미국은 28만원으로 부담해야 할 세금 차이가 54만원 이상 벌어진다. 이렇게 큰 세금 차이는 자동차에 대한 가치 반영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자동차의 가치를 매년 5%씩 감소한다는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설정으로 세금을 매기는 반면, 미국은 전국자동차딜러협회에서 평가한 자동차의 공정시장가치로 산정하여 자동차의 자산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세금 부담액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과세의 목적이 시대에 따라 변한 자동차의 성격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자동차는 사치품으로 고소득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높은 배기량을 가진 자동차일수록 높은 세 부담을 가지도록 한 것이었다. 이 관계는 오늘날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깨진지 오래다. 자동차가 대중화되어 사치의 목적을 넘어 생계를 위한 일상적 생필품이 되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사치품'으로 간주하여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손보지 않은 것이다. 2.5억원 정도의 주택을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재산세가 44만원 정도인데, 이것은 소나타를 5년 보유하여 내야 할 자동차세와 동일하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이미 자동차가 일상용품이 되어 '재산세'가 아닌 '도로손상부담금'과 '환경오염부담금'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를 20년 동안 지금까지 손도 대지 못한 후진적 제도의 피해는 고스란히 자동차를 보유했다는 죄를 가진 서민들이다.

개선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차량 가격으로 세금을 매기면 된다. 더 비싼 차를 살수록 부담해야 할 세금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면 간단한 문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나 연비로 과세하는 방안도 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은 운전자 개인의 운전 습관에 따라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 좀 아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연비는 운전자의 발 끝에서 나온다고 하듯이. 이 외에 자동차 마력, 무게 등의 기준도 실사용에서 객관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차량 가격을 중심으로 이러한 기준들을 보완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납득할만한 과세기준이 될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자동차세는 대표적인 비효율, 불공평, 적폐, 부당, 착취, 차별, 불평등, 불합리, 후진성의 상징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과세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한 논문이 1990년대에도 있었던 것을 보면 정말 어지간히도 바꾸기 싫은 세금인 것이 분명하다. 이미 친환경의 타이틀로 등장한 전기차로의 대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그 전환이 완전히 끝날 마지막 순간까지 서민의 마지막 수건을 쥐어 짤 각오로 철옹성처럼 버틸 자동차세를 보면서도 할인을 받아 지불하는 내 속이 뒤틀린다.

참고문헌
김승래, 김명규, 임병인 (2016), "가격기준 자동차세제 개편의 소득재분배효과", 한국지방재정논집, 21(2), 115-143.
김흥권, 심석무 (2010), "우리나라 자동차세의 개선방안", 세무학연구, 27(4), 227-260.
장상록, 김영락 (2016), "자동차세 징수율 제고에 관한 연구", 세무회계연구, 50, 125-144.

작가의 이전글 <죄 많은 소녀>, 미지의 공포와 인간의 비합리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