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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나는 변한 적 있는가?

by 멕켄지

우주의 중심이 바뀌는 순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우주의 중심이 나에게서 아이로 축이 바뀐다. 철저히 나 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그 축이 옮겨가는 대 변혁을 인생 살면서 경험하게 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면 이만큼 숭고하고 강력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늘 그렇듯 한계를 곧 맞게 된다.


내가 이미 완전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 아이에게도 주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내 욕망일 때가 많다. 모든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한다.

이 아이의 장성한 미래를 위해서... 내가 갖지 못한 삶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기를... 그러나 곧 그 한계에 부딪혀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이유는 내 자녀가 내 뜻대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 뜻대로 내 아이를 조정하고 싶은 나의 통제 욕구이다. 그 통제 욕구의 정당성은 그렇게 내 뜻대로 했을 때 내 아이가 잘 될 거라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확신을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물고기에게 고양이 사는 법을 가르치는 엄마


조용히 곰곰이 생각해 보면 허상일 때가 많다. 그 근거는 대체로 인류가 쌓아온 경험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내 아이는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격체이다. 내 아이를 그 평균의 데이터에 끼워 맞춰 키운다는 것은 ‘엄마가 물고기를 낳았어’라는 동화책에서도 보듯 물고기를 낳은 자식에게 고양이 생활양식을 가르치는 거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당신은 변한 적 있는가?


또한 그보다 더 큰 정직한 사실 한 가지는 내가 아이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지만 정작 나는 삶에서 좋은 방향과 목적을 위해 변화한 적 있는가이다. 작은 일례로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거나 식이요법을 하겠다는 결심, 금주, 금연, 폰 사용 등 매 년 하는 새해 결심들이 지켜지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내 아이가 내 계획대로 살 거라는 기대는 어쩌면 처음부터 허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기도가 바뀌었다. 나를 먼저 변화시켜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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