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에 익숙해지다

by 한가람

날이 더워지면서 아침 7시만 되어도 햇빛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달 들어서 어린 승객들이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에서 초등학교는 두 번째 정류장, 고등학교는 세 번째 정류장이다. 걸어서 10~15분 정도의 거리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친구들과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다 버스가 오면 우르르 올라탄다. 초등학생들은 좀 더 시끌벅적하다.

좌석을 반이상 채우고 있던 학생들이 내릴 정류장에서 모두 내리고 나면 순간 버스가 텅 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등굣길 짧은 거리에 버스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어린 시절과 대비가 되었다.

걷는 것이 당연했기에 버스를 탄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이었다. 버스는 어디 멀리 갈 때 이용하는 것이었다.


따가운 햇빛을 잠시나마 피하고 시원한 곳에서 머물 수 있으니 버스를 타는 것이 이득이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땀이 흘러 찝찝한 느낌도 덜 느낄 수 있다.


이동 수단이 있다는 것은 분명 편리하고 유리하다.

그래서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 삶의 핵심 가치는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욕망을 산업에서 잘 읽어낸 것 일터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 전력수급이 불안정해서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잦았었다. 양초를 비상용으로 두는 집들이 많았고 렌턴 역시 비상용으로 두는 집들이 많았다. 예고 없이 정전이 되면 초를 켜고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을 먹고 초를 켜고 설거지를 했었다.


학교는 걸어서 가는 것이 당연했고 시골에서는 산을 넘어 학교를 가는 경우도 많았다. 어린아이 걸음으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를 걸어 다녔던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비 오는 날은 비를 맞는 것이 다반사였고 아니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운동화가 젖으면 빨아서 힘껏 털고 연탄불 옆에 두고 말렸다. 가끔 그러다 살짝 태워먹기도 했던 것 같다.


장마철이 되면 처마 안쪽에 빨래를 널고

덜 마른 옷을 그냥 입기도 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인내심이 더 많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당연시하며 살아낸 것이다.


그랬기에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갖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 세대는 무언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간들을 살아왔기에 현재 우리가 누리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대응방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불편함에 투덜거릴지언정 두 손 놓고 있지는 않는다.


그럼 많은 것이 갖춰진 환경에서 성장한 다음 세대들은 어떨까? 우리가 느끼는 편리함이 그들에게는 기본값으로 보인다.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다 보니 기본이 작동되지 않는 불편해지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시가 그들 내면에 없기에 혼란스러워하고 감정적으로 격앙되며 물러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불편한 환경에 있다가 편리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만족감과 함께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편리한 환경에 있다가 불편한 환경을 맞닥뜨리게 되면 박탈감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편리함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느 정도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식으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몸을 움직여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편리함이 좋기는 하지만 필요한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대신해 주는 기계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모든 기계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 일이야 생기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전력수요가 끊임없이 늘어나게 된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도 살아있는 생명체이니 머리도 몸도 어느 정도는 쓰면서 살아야 더 건강히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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