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by 한가람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창밖이 아직 어슴푸레한 것을 보니 5 시무렵인가보다.

바로 일어나야지 하다가 전신을 휘감는 고단함에 그냥 더 누워있기로 했다. 몸의 감각을 천천히 느껴보면서 잠들려는 몸을 깨웠다. 몸에 생기가 돈다.


창밖에서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왔다. 가만히 그 바람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속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음이 느껴졌다. 살림살이, 자녀교육, 가족과 나의 건강, 해야 하는 일들, 노후준비 등 일상의 고만고만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휘몰아치려 했다.


앞 날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앞 날을 전혀 대비하지 않고 살 수도 없다. 어찌 보면 상당히 불합리하다 생각되는데 우리는 그런 세상을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다.


때로는 '지금의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할 수 있는 한 대비를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많은 준비를 하려 하고, 또 하고 있다.


주위에 평탄하게 살던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모습들을 보면 '참, 인생이 뭐냐'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옹다옹 사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모든 생각들은 그저 '생각'이다. 실체가 없고 사실이 아니며 나의 정신작용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지만 타인의 사례를 보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생각들이 마음속에서 맴돌다가 가끔 거센 바람으로 몰아친다. 마치 선택게임을 하는 것 같다. '걱정'을 선택하면 거센 바람이 발생한다. 더운 수증기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더 발달하는 태풍처럼 말이다. '내려놓기'를 선택하면 바람이 언제 있었냐는 듯 고요해진다.


고요한 마음.

이 마음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마음속 무수한 바람들을 잠재우기에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느끼는 불안 속에는 무수히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어있다.


'비난받으면 어떡하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소중한 것을 못 지키게 되면 어떡하지?',

'모두가 내게서 떠나가면 어떡하지?',

'실패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 말이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게 될지 모르는데도 추정하고, 예측하고, 과거의 유사한 경험을 현재에 끌어와서 마치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되거나 안되거나.

확률은 반반인데 곤란해지지 않고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반반의 확률에서 부정적인 생각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 수도, 웬만큼 잘해서는 잘한다고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학습했기 때문일 수도,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에서 밀려나면 다시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우리는 꽤 요구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떤 결과도 정해지지 않았다. 적어도 결과가 나오고 난 뒤 그것에 대해 검토하고 다른 방향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긍정적 생각 쪽에 머물 수 있다면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시 수월할 것이다. 마음에 계속 멀미가 나서야 괴롭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직 모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섣부른 예측을 가지고 자신이나 상대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이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이쯤에서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때로 예측한 대로 잘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 자신이 못나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대로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예시가 될 수도 있으니 시도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방식이 나에게도 반. 드. 시. 잘 적용되리라 믿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은 적합한 일이지만 결과가 반드시 좋아야 한다고 믿는 것은 견디기 힘든 압박감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 일이기도 하다.


나태해져서는 안 되겠지만 쉬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목표를 향해 총력을 기울이고 달려가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고 멋져 보인다. 때로는 감명을 받아 나의 일상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좋은 일이다. 함께 성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시 마음을 놓치면 비교가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게 된다. 아직 아무것도 결론 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생이 늘 좋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순간도 경험이고 힘든 순간도 경험이다. 그 순간들을 순간으로 흘려보내고 영원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한결 고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균형은 한번 맞췄다고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 매 순간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흔들리는 것이 겁이 날 수 있다. 안정감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감각이고 그래서 불안은 참 싫다. 싫어한다고 해서 불안을 안 느끼고 살 수 있냐면 그건 아니다. 불안이 있어야 위험한 행동을 안 하고 그래야 생존에 유리하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불안의 메시지는 '대비해!'이니까.


그냥 그런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허점이 많고 욕심도 많다. 약하기도 하고 유혹에도 잘 빠진다. 그럼에도 사회를 만들어내고 문명을 이룩했다. 하고자 하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완벽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니다'이다. 결점이 있었기에 더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을 수 있었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했기에 무리를 지어 생활했다. 그러면서 필요가 생겼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왔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말이다. 인류사에 문제가 없던 때가 있었나?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결핍이 있으니 해결하고자 시도를 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 때로는 유용하고 때로는 유용하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냥 하는 것이다. 하다 보면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상황이 가져오는 어려움에 자신의 생각까지 더해서 힘들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떠다니는 생각들에 휩쓸려 들어가지 말자.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나아질 수도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자.

생각이 의미가 있어지는 때는 변화를 가져올 때이다.

몸을 움직여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촉진하는 때이다.

그러니 심호흡하고 일어나서 움직이자.


행함이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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