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향한 감독의 시선

노량, 그 참담함과 서글픔에 대하여

by 한가람

바다 위 안개가 걷히고 적선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편이 살거나 적이 죽거나

이 순간 타협점은 없다.

포탄이 배로 날아들고 총알과 화살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옆에 있던 병사가 총탄에 쓰러지고 포탄에 맞은 배에서는 파편이 튀어 오른다.

배가 위험함을 알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기필코 적의 수장을 쓰러뜨려야 한다.

이렇게나 참담하고 지긋지긋하게 끌어온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지휘관의 명에 토를 달지 않는다. 모두 같은 뜻을 품고 앞으로 나갈 뿐이다.

포탄을 계속 맞은 배는 기울어진다.

그럼에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긴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떨어진 귀환명령에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병사들이 있다.

그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살아서 고향으로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지휘관은 그들의 그런 열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추겨서 결사항전을 하도록 만든다.

살고 싶으면 전투에서 이기라고 말이다.

그래서 도망병은 다시 배에 오르고

죽음의 공포를 삶의 광기로 치환한 채 전투를 이어간다.


배가 배끼리 부딪치고

두 동강 난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날아드는 화포의 매캐한 연기 속에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몸들이 부딪치고

가차 없는 칼날은 서로의 적 앞에

서슴없이 새파란 날을 세운다.


베이고 찔리고 불탄 병사들이 갑판 위를 채워나간다.

젊디 젊은 목숨들이

노회한 권력자들의 명에 의해 스러져간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이들은

삶을 잃고 타국의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공을 앞세우는 이들의 낮은 책략 속에

힘없는 백성들이 희생되고

전쟁을 끝내고자 죽을 힘을 다하던 수뇌부의 고뇌는 보답받을 길이 없다.

전쟁을 끝내야만 하는데,

끝내야만 하는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인가.

싸움을 걸어온 쪽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얻고자 자국의 그 수많은 생명들을 앞세웠는가?

싸움을 막아내는 쪽은 전운이 감도는 것을 알고도

눈을 가리고 진실을 외면한 채

어찌 그리 허술하게 대비를 한 것인가?

그리고 싸움에 나서는 자국의 장수들을 믿지 못하고 그리도 그들을 견제한 것인가?




감독은 처음부터 이순신에 대해 삼부작으로

기획을 했다고 한다.

명량, 한산, 노량 순으로 제작하고 세상에 내보였으나 어쩌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노량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명량의 압도적인 전투신은 통쾌함과 함께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영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가슴이 웅대해지는 경험을 나누었다.

14년 개봉당시 관람인원 176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으니 말이다.


한산의 분위기는 전략가로서의 모습이 한층 두드러져 보였다.

너무나 격차가 벌어지는 군사력을 가지고

어떻게 승리를 끌어낼 수 있을지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담겼다.

나라를 지켜낼 명을 받은 장수로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다.

자신의 손에 나라의 명운이 걸렸다

전세는 불리하고 조정은 분열되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슨 수를 쓰던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전반적으로 어두웠던 색감 역시 주인공의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침내 아무도 해본 적이 없던 진법을

고안해 냈고 승리했다.

덕분에 바다는 다시 조선의 것이 되었다.

백성들은 환호하고 병사들의 사기는 치솟았다.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긋지긋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음을 모두 느꼈다.

과연 이순신은 그것으로 안심이 되었을까?


노량은 보는 내내 깊은 허무가 느껴졌다.

이순신은 고달파보인다.

불굴의 영웅이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고신으로 인해 얻은 지병과 아들의 죽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바다를 지켜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모두가 그만두기를 바라는 전쟁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해야만 나라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싸움은 처절했고 비장했으며 고단했다.

전쟁 속에서 한 인간은 그저 필요한 도구일 뿐이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다.

전쟁은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의 야욕을 먹고 자라고

대대로 살던 터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려 나온

일반 백성들이 그 대가를 치른다.


살이 베이고 찢기고 목숨을 잃는 것은

높은 자리에 있는 그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전쟁을 입에 담는 것일까?

막아내는 쪽도 상황은 비슷하다

평상시에는 호가호위하던 이들이

전쟁이 터지자 서로 책임을 미루고

치밀하지 못하고 서툴었던 결정은 애꿎은 백성들이

고스란히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전쟁은 참혹하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일상을 잘 누리고 있던 사람들을

어느 날 갑자기 끌고 와서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전쟁이 아닌가.

군사력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쉽게 넘볼 수 없도록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하고

나라가 강건해야 한다.


지금도 쉽게 전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논리 속에 자신들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전쟁이 상대만 다치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노량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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