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드르륵
차양이 올라가는 소리가 납니다.
주인장이 출근했군요.
그이는 문을 열고 항상 블라인드를 먼저 올립니다.
환한 햇살이 가게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것이 좋다나요.
그렇게 햇살이 제 위로 비추면
오늘 일과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주인장이 면포를 들고 돌아다니며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게 저와 제 동료들을
닦아줍니다.
그 손길에 우리 모두 더 윤이 납니다.
손님들도 좋아하시겠지요?
주인장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살짝 훔치고
주방으로 가 음료들을 만들 준비를 합니다.
블렌더, 커피머신, 재료들을 담아놓는 통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빈 통에는 재료들을 채워 넣습니다
늘 반복되는 풍경인데 이렇게 매번 정확하게 움직이는
그이가 때로는 신기합니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주인장의 고개가 돌아갑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장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합니다.
방금 까지 오픈 준비로 힘을 썼는데도 쌩쌩해 보입니다.
들어온 손님이 두리번거리다가 제 쪽으로 와서
제 위에 앉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의자, 아니 가장 인기 있는 자리거든요.
이번 손님은 고단한지 완전히 제게 몸을 기울입니다.
아래로 처지는 팔다리를 보니 밤새워 일을 한 모양입니다.
"아, 편하다."
손님은 딱 이 말 한마디를 하고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단골의 고단함을 알아챈 주인장도 늘 마시는 음료를 앞에 조용히 내려놓고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제게 있는 동안 편안히 쉬었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손님은
한 모금씩 차를 마시면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워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방해되지 않게 포근히 손님을 감쌌습니다.
"차 잘 마시고 가요."
"네, 안녕히 가세요."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맑게 울립니다.
오! 제 자리만 고집하는 손님이 오셨네요.
이 분은 늘 같은 시간에 와서 한두 시간 정도 글을 쓰다가 갑니다.
제 자리가 비워 있지 않으면 그냥 나갈 때도 있었지요. 다른 자리에 앉으면 글이 잘 안 써진다나요.
신기하죠? 제게 마법 같은 힘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런 거라면 멋질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산뜻한 미소를 짓고는 주문한 간단한 브런치를 먹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타닥 타다닥 자판을 치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저는 글을 쓰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잘 받쳐드렸어요.
앉아있는 동안 불편하면 집중이 흐트러질 테니까요.
자판을 치는 소리가 멈췄어요.
손님이 가뿐하게 일어나네요.
가벼운 몸짓을 보니 이번 글도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다 끝내셨어요?"
"덕분에요. 저 자리에 앉으면 글이 잘 써져요."
"다행이네요."
주인장과 손님이 가벼운 인사를 나눕니다.
익숙하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딸랑!"
다른 손님이 오셨어요.
혼자 오셨는데 음료는 둘을 주문하고 제 자리에 앉으셨어요.
맞은편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네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요?
웅크린듯한 자세로 앉아 이따금 자기 몫의 음료를 홀짝입니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네요.
이 손님에게서는 가라앉는 느낌이 드네요.
부디 저와 함께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회복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특별히 더 포근히 감싸드렸어요.
말없이 차를 홀짝이던 손님은 무언가 다져진 듯
조금은 더 힘 있게 일어나서 나가네요.
괜찮아 지신 거겠죠?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녁이 되었어요.
둘셋씩 짝을 지어 손님들이 들어옵니다.
제 동료들도 바빠지지요.
이따 밤에 서로 나눌이야기가 많을 듯합니다.
제 쪽으로 세분의 손님들이 오셨어요.
서로 사이가 좋은지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어요.
서로 잘 지내는 사람들은 보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에요.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가 퍼져나가네요.
좋습니다. 저도 신나게 들썩, 아! 들썩이면 안 되는군요.
앉는 자리를 편안히 다듬고 손님이 잘 쉬실 수 있게 해 드렸어요.
나가실 때 다들 자리가 참 편하다고 하시네요
오늘도 제가 일을 썩 잘 해냈나 봅니다.
이제 주인장도 정리를 합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주인장도 가끔은 제자리로 와서
잠시 쉬었다가 퇴근한답니다.
제 자리에 앉았다가 가면 피로가 덜하대요.
그럼요.
언제나 제가 최선을 다해서 편안히 앉으실 수 있게 해드리고 있거든요.
늘 우리를 돌봐주는 주인장인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이제 저의 하루도 끝나가고 있어요.
오늘도 잘 해낸 거 같아요.
저도 지금부터 쉴 거랍니다.
아, 참!
쉬고 싶을 때는 언제나 기억해 주세요.
당신을 편안히 쉬게 해 줄 의자가 여기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