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댕겅!
가지가 잘려나간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슬금슬금 하늘로 향하던
가지에 가차 없는 응징이 가해진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것이 더는 허락되지 않는다.
얼마든지 하늘로 가지를 뻗어도 되던 옛 시절을
잠시 떠올려본다.
잘 자란다고 저를 쓰다듬던 손길
목마를세라 때가 되면 뿌려지던 시원한 물
이따금 튼튼해지라고 주던 비료까지
저를 잘 돌봐주던 그 손길이 그리워졌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에 전깃줄들이 아른거린다.
저것일까?
저가 하늘로 가지를 뻗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자신은 저 전깃줄이 다치지 않게 가지를 내보낼 자신이 있건만 지금 저를 다듬는 손길에 관용은 없다.
저가 여기서 살겠다고 말한 적도 없건만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붕떠서 눕혀지고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을 달리다
이 자리에 심겨졌다.
공기도 다르고 햇빛도 다르고 습기도 다른
이 땅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뿌리를 다시 펴고 힘차게 가지를 뻗어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본성이었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원하는 대로 가지를 뻗으면 안 된단다.
전깃줄을 넘은 가지는 잘려나간다.
낮은 높이에서 차도로 뻗은 가지도 잘려나간다.
간판을 가리고 있는 가지도 잘려나간다.
좁디좁은 제한된 공간만이 허용된다.
이렇게 다 잘라버릴 것을 애초에 왜 여기서 자라도록 한 것일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너른 땅에서 다른 나무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던 시절에는 쑥쑥 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었는데
이젠 그러면 안 된단다.
왜, 안 되는 거지?
.
.
.
.
.
.
답을 해주는 이는 없다.
그저 이따금 그늘이 있어서 다행이다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아마도 저가 여기 있는 이유인가 보다.
한여름 더운 햇빛을 막아내는 일말이다.
앙상해진 가지에서 돋아난 잎들이 얼마나 그늘을 만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가 여기에 있는 이유 하나를 알게 되었다.
아픔을 견뎌내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적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구나.
나무는 조용히 물을 끌어올리고 가지와 잎을 돋아내었다.
내년 봄에 비록 또 잘릴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