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5

반짝이는 돌

by 한가람


오늘은 부족의 수호석을 지키는 지킴이를 새로 맞이하는 날입니다.


부족 사람들은 모두 풍요로움과 안녕을 기원하며 새 지킴이가 될 아이를 환영합니다.


지킴이가 되는 아이는 부족의 신녀가 골랐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지킴이는 바우네 딸이 되었습니다.

눈동자가 맑고 초롱초롱한 아이입니다.


지킴이로 선택된 집에는 부족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 무너진 담장을 고쳐주고 지붕도 새로 이어주고 아궁이도 손봐줍니다. 매년 곡식과 옷감도 받을 수 있지요. 제일 좋은 건 지킴이의 집이라며 부족 사람들이 이름에 '님'을 붙여서 부른다는 거예요.

'님'은 신분이 높은 분들에게만 붙일 수 있었거든요.


바우네는 좋은 일이라며 가족들 모두 감격하고 있습니다. 아이도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기뻤습니다.


지킴이가 되면 집을 나와야 한다는 것이 슬펐지만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녀님을 따라 이곳 신녀궁으로 와서 한 달 동안 몸가짐을 배우고 정화의식도 무사히 치러냈습니다.


이제 곧 신녀님이 지킴이 의식을 치르실 겁니다. 그리고 나면 아이는 동굴로 가서 홀로 평생 동안 부족의 수호석을 지키게 됩니다.


맑은 기운을 유지해야 하기에 두 번 다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는 갈 수 없고 신녀님 말고 다른 사람들과는 만날 수 없습니다.


신녀님은 무척 다정하셨습니다. 예법을 배울 때 아이가 실수를 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저 미소 지으며 하다 보면 잘될 거라고 해주셨습니다. 늘 끼니를 풍족히 챙기셨고 잠은 잘 자는지 가족들 생각은 많이 나는지 마음은 어떤지 묻고 달래주시고 다독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신녀님이 참 좋았습니다.

가족들을 못 보지만 신녀님이 계시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족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환한 달빛아래 수호석이 있는 동굴 앞에 다들 모였습니다.

신녀님은 희고 고운 옷을 입으시고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셨습니다. 악공들의 피리 소리는 정겹다가 구슬프고 애원하듯 떨렸다가 고수의 북소리와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의식이 진행도는 동안 아이는 동굴 앞 너럭바위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습니다.

신녀님이 너럭바위를 돌며 축수를 내리고 아름답게 춤추시는 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뭔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어려워지고 점점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럴 거라고 신녀님이 말씀해 주셨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신께 가까이 가면 그렇다고 하셨거든요.


이윽고 의식은 끝이 났습니다. 신녀는 아이가 지킴이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부족사람들에게 모두 돌아갈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아이를 안고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곳이 아이의 집입니다. 자신이 이따금 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돌봐주고 말동무가 되어줄 것입니다.

아이에게 세상은 자신과 수호석만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밤은 아이와 이곳에 머물 것입니다.


신녀는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수호석을 바라보다가 더 안쪽에 있는 거처로 들어갔습니다.

부족이 터를 잡은 이곳은 수호석 덕분에 늘 땅이 기름지고 곡식이 잘 되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이 돌이 무엇인지는 신녀자신도 모릅니다. 다만 빛이 더 영롱해지는 해에는 크게 풍년이 들어서 모두 넉넉히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지요.

그래서 부족 사람들은 수호석이 늘 영롱하게 빛나기를 바랐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였겠지요. 수호석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늘 수호석을 닦고 지킬 사람을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말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릅니다.

맑은 영혼을 지닌 아이를 선택해서 수호석 지킴이를 하게 했지요. 선대의 신녀들이 대를 이어 가장 중요하게 해 왔던 일입니다. 자신도 그 의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 의식이 부족을 번영하게 해주고 있으니까요.


신녀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말갛고 뽀얀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이 아이는 아침마다 맑은 샘에 가서 첫물을 떠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로 정성스럽게 수호석을 닦겠지요. 하루에 세 번씩 산길을 올라가 물을 떠 오고 수호석을 닦고 주변을 정갈하게 치울 것입니다.


보름에 한번 자신이 와서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외에 아이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외롭고 고될 것입니다. 밥을 하고 불을 피우고 빨래를 하고 씻고 모두 혼자 해내야 합니다.


지난 한 달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아이는 잘 따라주었고 자신이 지킴이로 선택된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이가 지킴이가 된 덕에 가족들은 이제 평생 배곯을 걱정은 하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만족할 테지요. 아이도 가족들이 저로 인해 잘 살게 되었다고 하니 만족하는 듯 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덧 입혀지면 아이의 이 뽀얗고 말간 얼굴은 창백해지고 생기를 잃어가게 되겠지요.

그 시기가 가능한 늦게 오기를 바라봅니다.

자신은 그런 아이를 끝까지 돌볼 것입니다.


신녀라는 자리가 참 고약합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도 부족사람들에게 그만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긴 밤 내내 그저 아이가 살아갈 그 시간이 덜 힘들고 평안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부디 아이가 진실에 눈을 뜨지 않고 지금처럼 고마운 마음으로 이 모든 어려움에 의미가 있다 여기며 만족스럽게 살다 가기를 바라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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