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2

나무와 물웅덩이

by 한가람

사바나의 초원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라락 사라락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아름다운 선율 같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밝은 태양을 보며

나무는 오늘 하루도 잎으로 내보낼 수분과

땅속 깊이 지하수에 가닿아있는 뿌리에서

끌어올릴 수분의 양을 조절했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오는 이 초원에서는

건기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뿌리는 늘 물이 흐르는 땅속을 찾아 헤맸고

잎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유지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서 목마를 일은 드물었지만 새들이 전해주는 물 웅덩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근처에 물 웅덩이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무에게는 작은 소원 하나가 생겨났다.


우기가 되었다.

사바나의 생명들이 갈증에 허덕일 무렵 드디어 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늘에서 시원하게 내리는 빗물이 반가웠다.

갈색으로 변한 이 초원이

이제 곧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나무는 그 풍경을 그려보며

세차게 잎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를 기꺼운 마음으로 들었다.


이번 우기는 비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나무의 앞에도 강줄기처럼 물흐름이 나타났다.

졸졸졸 콸콸콸

물흐름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 맞춰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다.

이러다 자신도 물살에 쓸려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즈음에 물흐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무 앞에는 자신의 그림자만큼 물웅덩이가 자리 잡았다.


해가 뜬 아침 물웅덩이에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빛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나무는 처음으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도 보고 이파리를 뒤집어도 보고 그 모습이 그대로 물웅덩이에 비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물이 있으니 뿌리를 조금만 뻗어도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나무는 행복했다.


"안녕하세요 나무님"

물웅덩이가 인사했다.


"응, 안녕"

나무는 막 태어나 자기 앞에 자리 잡은 물웅덩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둘은 곧 친해졌다.

작은 동물들이 와서 핥짝핥짝 물을 마셔대면

물웅덩이는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한낮의 햇빛이 너무 뜨거울 때면

나무는 조금 더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밤이 되면 하늘에 있던 별과 달이

물웅덩이 속으로 쏙 들어왔다.

나무는 작은 웅덩이 속에 담긴 하늘이

참 예뻐 보였다.

나무가 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을 안 물웅덩이는

밤이 되면 표면을 더 잔잔하게 만들었다.

.

.

.

.

.


비가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곧 건기가 시작될 것이다.

나무는 물웅덩이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땅속 깊이 있는 지하수만

마셨다. 물웅덩이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나무님, 제 물을 마셔주세요.

그러면 저는 늘 함께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다음 우기 때 또 찾아올 거예요."

물웅덩이는 말간 얼굴을 빛내며 말했다.


나무는 그건 알 수 없는 거라고, 내가 여기서 살아온 수십 년 동안 네가 처음 생긴 물웅덩이라고, 또 이런 행운이 올지 어떨지 모른다고, 그래서 너를 좀 더 오래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웅덩이로 뿌리를 뻗어 물을 마셨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네가 최고야."

물웅덩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건기가 시작되었고 물웅덩이는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하지만 나무도 물웅덩이도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장난을 쳤다.

그리고 서로에게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마침내 물웅덩이가 사라지던 날 나무는 깨달았다.

공기 중 어디든지 물웅덩이가 머물러있었고

늘 함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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