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물웅덩이
사바나의 초원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라락 사라락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아름다운 선율 같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밝은 태양을 보며
나무는 오늘 하루도 잎으로 내보낼 수분과
땅속 깊이 지하수에 가닿아있는 뿌리에서
끌어올릴 수분의 양을 조절했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오는 이 초원에서는
건기를 잘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뿌리는 늘 물이 흐르는 땅속을 찾아 헤맸고
잎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유지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서 목마를 일은 드물었지만 새들이 전해주는 물 웅덩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근처에 물 웅덩이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무에게는 작은 소원 하나가 생겨났다.
우기가 되었다.
사바나의 생명들이 갈증에 허덕일 무렵 드디어 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늘에서 시원하게 내리는 빗물이 반가웠다.
갈색으로 변한 이 초원이
이제 곧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나무는 그 풍경을 그려보며
세차게 잎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를 기꺼운 마음으로 들었다.
이번 우기는 비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나무의 앞에도 강줄기처럼 물흐름이 나타났다.
졸졸졸 콸콸콸
물흐름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 맞춰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다.
이러다 자신도 물살에 쓸려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즈음에 물흐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무 앞에는 자신의 그림자만큼 물웅덩이가 자리 잡았다.
해가 뜬 아침 물웅덩이에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빛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나무는 처음으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도 보고 이파리를 뒤집어도 보고 그 모습이 그대로 물웅덩이에 비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물이 있으니 뿌리를 조금만 뻗어도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나무는 행복했다.
"안녕하세요 나무님"
물웅덩이가 인사했다.
"응, 안녕"
나무는 막 태어나 자기 앞에 자리 잡은 물웅덩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둘은 곧 친해졌다.
작은 동물들이 와서 핥짝핥짝 물을 마셔대면
물웅덩이는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한낮의 햇빛이 너무 뜨거울 때면
나무는 조금 더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밤이 되면 하늘에 있던 별과 달이
물웅덩이 속으로 쏙 들어왔다.
나무는 작은 웅덩이 속에 담긴 하늘이
참 예뻐 보였다.
나무가 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을 안 물웅덩이는
밤이 되면 표면을 더 잔잔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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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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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곧 건기가 시작될 것이다.
나무는 물웅덩이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땅속 깊이 있는 지하수만
마셨다. 물웅덩이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나무님, 제 물을 마셔주세요.
그러면 저는 늘 함께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다음 우기 때 또 찾아올 거예요."
물웅덩이는 말간 얼굴을 빛내며 말했다.
나무는 그건 알 수 없는 거라고, 내가 여기서 살아온 수십 년 동안 네가 처음 생긴 물웅덩이라고, 또 이런 행운이 올지 어떨지 모른다고, 그래서 너를 좀 더 오래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웅덩이로 뿌리를 뻗어 물을 마셨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네가 최고야."
물웅덩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건기가 시작되었고 물웅덩이는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하지만 나무도 물웅덩이도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장난을 쳤다.
그리고 서로에게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마침내 물웅덩이가 사라지던 날 나무는 깨달았다.
공기 중 어디든지 물웅덩이가 머물러있었고
늘 함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