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9

나무와 덩굴

by 한가람

초록빛 가득한 숲 속에 잘 생긴 금강송이 있었습니다.

단단하고 붉은 수간이 하늘로 힘차게 뻗어있고

그 끝에는 윤이 나는 잎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지요.

어느 날 땅 위로 뻗어가던 덩굴이 찾아와 말을 걸었어요.


"저기요. 나무 아저씨 제가 저 위로 가보고 싶은데 아저씨를 타고 올라가도 될까요?"


나무는 고개를 숙여 덩굴을 바라보았어요.

곧게 하늘을 향한 자기와는 달리 덩굴은 땅으로 땅으로 퍼져나가고 있었어요.


"넌 땅으로 자라는 아이가 아니냐. 어째서 하늘로 향하고 싶어 진 거니?"

나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덩굴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어요.

"음, 그게요. 땅으로 줄기를 쭉쭉 뻗어가는 건 재밌어요. 돌멩이들을 넘어가기도 하고 개미집을 구경하기도 하고 보드라운 흙에 기대어 잠도 자고요."


"그렇구나."

나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덩굴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요.


"네. 숲 속 동물들과 노는 것도 즐거웠어요.

토끼는 제 덩굴 사이로 뛰어다녔고, 들쥐는 제 덩굴 사이로 숨기도 했어요. 개미들이 제 줄기 위로 달리기 시합을 할 때는 간지러워서 깔깔깔 웃기도 했어요. "


덩굴은 작은 잎들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멋지게 들리는구나."

금강송은 덩굴이 더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격려했어요.


"맞아요. 충분히 즐거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놀러 온 나비 한 마리가 제게 물었어요. 너는 왜 땅으로만 자라냐고요. 이웃 숲에서 본 덩굴은 나무에 기대어 높이 높이 자라고 있다면서 말이에요. 저는 그전까지 한 번도 땅 말고 다른 곳으로 자라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랬구나."

나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제 주위를 둘러봤더니 모두 위로 자라고 있더라고요. 그걸 느끼고 나니 위로 자라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지더라고요."


"호기심이니?"


"그럴지도요.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땅으로는 다녀봤으니 위로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지금과는 다른 느낌일 거 같거든요."


나무는 부드럽게 웃으며 덩굴에게 말했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가 보구나."


"네! 맞아요!"


"그런데 왜 하필 나에게 부탁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게요. 나무아저씨가 이 숲에서 제일 곧고 제일 높으니까요."


"그랬구나. 나를 타고 올라오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얘야, 위로 올라올수록 세찬 바람과 흔들림을 견뎌야 한단다. 그리고 목을 축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거야. 땅 위에 있을 때는 중력을 거스르지 않아도 되지만 위로 올라올수록 중력을 거슬러야 하니까. 감당할 수 있겠니?"


"네. 아마도 전 괜찮을 거예요. 바위에 막혔을 때도, 웅덩이에 빠졌을 때도, 사람들에게 밟혔을 때도 늘 다시 줄기를 띄워내서 잘 자라왔거든요. 어려운 건 문제가 아니에요. 늘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만약 아저씨가 거절하면 그건 문제가 될 거예요.

아저씨 같은 나무를 찾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요."

덩굴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용감하구나. 그래 좋다. 나에게 하나만 약속해 주겠니? 그럼 네가 나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허락해 주마."

나무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어요.


"정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게요! 허락만 해주세요."

덩굴은 정말 기뻤어요. 위쪽 세상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이제 곧 알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찼어요.


"나는 내 몸이 조이는 것은 싫단다. 그러니 네가 자랄 때 나를 너무 꽉 붙잡지 않을 수 있겠니? 그것만 약속해 주면 된단다."


덩굴은 생각했어요. 딱 붙들어야 자신이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기대어 자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고민이 되었어요. 하지만 곧 결정을 내렸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한 번의 경험이지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네. 그렇게 할게요! 어쩌면 세찬 바람에 떨어져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이라도 위쪽으로 자랄 수 있는 거니까 해볼래요."


"그래.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이제 올라와도 된단다."


덩굴은 나무를 조심스레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나무와 덩굴은 많이 친해졌어요.

나무는 생각보다 자신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덩굴은 나무의 경고가 생각보다 엄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태풍이 불었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날만큼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나무가 부드럽게 토닥여주는 말들에 힘을 내었어요.


나무는 덩굴이 꼭대기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덩굴도 자기 때문에 나무가 답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느슨하게 감아 올라갔어요.


그렇게 둘은 그 숲에서 가장 사이좋은 이웃이 되었답니다.

덩굴이 끝까지 나무와 함께였냐구요?

글쎄요. 그건 알 수 없지만 둘이 함께 있는 동안

더 많이 웃고

더 즐겁고

더 재미있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도 덩굴도 때가 되면 헤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 금강송

소나무의 제왕이라 불리며 일반 적송보다 목재로써 가치가 뛰어나 궁궐건축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미인송이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