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할까요? 1

열정의 지속

by 한가람

향긋한 국화향이 솔솔 올라온다.

유리주전자에서 제모습을 찾아가는 국화꽃들이

올망졸망 몸을 붙이고 있다.

빙그레 그려지는 너의 미소가 참 편안하다.

그 편안함에 기대어 평소 하지 않던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너는 네게 늘 열심히 살아간다고 이야기해 주지.

참 따뜻한 말이다. 고마워.

너의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나의 미련이겠지.


돌이켜보면 언제나

이루고 싶은 마음에 시작을 했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처음엔 즐겁게 느껴지고 힘이 나고

더 이루고 싶어 애쓰던 것들이

어느 순간 부담스러워지고 힘에 부치고

노동처럼 느껴질 때 그만두거나 떠나거나.

더 이상 그 '대상'에게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어.


그래, 그럴 수 있지. 역시 넌 상냥해.

있잖아,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어.

의미가 사라진 일에 붙들려 있는다는 것이

엄청난 모순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야.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한심함 혹은 부끄러움을 느꼈던 거 같아.

아, 맞아.

나 역시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끈기 없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지. 지금이야 모든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10대, 20대 때는 아니었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될 까봐 무수한 밤들을 불안 속에 보내기도 했지.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

뭔가가 잘 되지 않으면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이 격려가 아니라 절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지.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 시절 우리 모두에게 말이야.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나에게 드리웠던 어둠은 아마도 이러한 부분의 영향도 꽤 컸으리라 생각돼.

당시에 누군가가 쉬어가면서 해도 괜찮다고 해주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열정의 유통기간이 짧아도 괜찮다고

다시 열정을 피워 올리면 되는 거라고 안심시켜 줬더라면 그 시절 나를 충분히 괜찮은 존재로 느낄 수 있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대신 하고 싶었던 일에 에너지를 쓸 수 있었을 거 같기는 하다.


응, 맞아. 아마 그 시절 우리는 대다수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었을 거야. 겉으로는 까르르 웃으면서 혼자 있을 땐 불안과 싸우고 있었겠지.

어떤 일에 열정을 품는 것도 일마다 사람마다 다를 터인데 극대치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준을 맞춰버리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감각을 가지기 어렵겠지.


어린 시절 잘하는 사람과 비교되는 것이 아팠던 어른들이 다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아픔을 돌려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굴고 있는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되새기게 된다. 지식적으로는 뛰어날지 몰라도 시야는 좁고 생각은 편중되어 있으며 욕심은 많고 쉽게 동요되고 동조하며 현혹된다.


세상을 사는데 한 가지 방법만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내방식이 내게 익숙하듯 타인은 자신의 방식이 익숙할 뿐인 것이지 우열을 가릴 일도, 옳고 그름을 따질 일도 아니잖아.

생명을 해치거나 타인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문명화된 세상에서 자신의 속도에 따라 능력에 따라 산다 한들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빛나보이는 자리만 가치롭다 여기는 우리의 인식이 편협한 것인 텐데 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것인지 말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기계라 하더라도 아주 작은 부속 하나 가 고장 나 버리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마치 그 사람의 인격이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그래. 안타까운 부분이지.

네 말처럼 조금씩 매 순간 노력해 보는 거지.

한 번씩 내 모습을 돌아보려고 해.

중심을 잡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까.


뛰어난 이에게 칭찬과 격려가 가겠지만 사실 그 칭찬과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대상은 뛰어나지 않은 이들일 거야.

스스로 느껴지는 부족감에 속이 타들어가는 그들에게 천천히 가도 된다고 기다리면 또 다른 열정이 샘솟을 것이라고 말해주다면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찾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오늘도 함께 이야기 나눠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차 한잔 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