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한잔 할까요? 2

잊어줄 배려

by 한가람

지하철에서 내려 시계를 본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5분 정도 남아있다.

부지런히 걸으면 시간 맞춰서 도착할 수 있겠지.

늘 일찍 도착하는 네가 덜 기다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참, 그 몇 분이 뭐라고 말이지.


은은한 조명이 퍼지는 카페에 들어가

네가 있을만한 위치를 찾는다.

창가면서도 눈에 바로 띄지는 않는 자리.

찾았다!

다가가 인기척을 내니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금방 왔어."

예의 습관 같은 말들이 오가고 차를 주문한다.

난 황금빛 레모네이드 따뜻하게,

넌 붉은 노을 같은 히비스커스 시원하게.


이 날씨에 찬음료냐는 나의 타박에

너는 이 안은 따뜻하잖아라고 엷게 웃음을 보낸다.

너의 그런 너그러움이 참 좋다.

둘 다 새콤한 맛을 찾는 걸 보니 말은 안 해도

피곤함에 물들어 있나 보다.

새콤달콤한 맛을 느끼며 소소한 안부를 묻고 답한다.

별거 아닌 이 이야기들이 정겨운 건 너와 함께여서겠지.


한때 유명세를 날리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스타들의 근황을 추적하는 콘텐츠를 보고는 네가 한마디 한다.

"저거 꼭 저렇게 해야 하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렇게 하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 은퇴하고 일반인의 삶에 적응한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거 같아 보인다는 네 말에

나도 생각이 깊어진다.

그러게 한번 스타면 영원히 스타여야 할까?

현업에 있을 때야 관심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때도 수위는 조절할 필요가 있고

은퇴한 후라면 저런 관심이 좋게만 다가올까?


그러게 그들 스스로 알려지길 원한다면 모를까

일반인으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을 다시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드네.

하긴 네 말처럼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니까

해당 콘텐츠를 만드는 거겠지.

대중에게 한때의 이야깃거리를 주기 위해

한 사람의 일상에 파문이 이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 걸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런 상황을 대하는 우리 방식이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잊히길 바라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야.

누군가가 잊히길 바란다면 그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을 테니 말이지.


맞아. 어쩌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들의 직업과 그들을 동일시하다보니

그들에게 대중의 관심은 당연하다 여기고

그들도 그냥 사람이라는 걸 때로 잊는 거 같아.

누가 자신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게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아! 그래.

요즘은 이미지를 도용하고 재합성해서 떠도는 사진이나 영상들도 큰 문제지. 정말 큰 일이야.

여기저기 퍼 나르기 전에

'이게 나에 대한 거라면?'이라는 생각을

1초라도 할 수 있다면 그러진 못할 텐데 말이지.

뭐? 욕망이 도덕성을 이기는 거라고?

하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아마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없는 거겠지.


타인의 일이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수 있고

타인의 고통이 언젠가는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는데

순간의 충동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다니면 균형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욕망만 가득 들어차게 될 테지.


좀 씁쓸하네.

맞아. 자정작용이 생겨나겠지.

지금은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빠르다 보니

우리의 인식과 제도가 못 따라가고 있는 걸 테고.

이게 계속 이럴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니

어느 순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지성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해.


막연한 희망이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정했어.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다고 믿으며 살고 싶으니까.

너도 믿고 있다시피 인간은 성장할수 있는 존재니까.


그저 웃고 있지만 네 생각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람을 믿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너를 계속 봐왔으니까.

너의 비판은 늘 따뜻함이 묻어나지.

그게 네가 세상을 아직 믿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런 너여서 좋은 거니까.


경쾌한 너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그래 웃자.

많은 날들이 슬프지만

또 많은 날들이 평온하고

많은 날들이 힘들지만

또 많은 날들이 평범해.

힘들다 힘들다 해도 어찌어찌 지내왔고

그 사이사이 즐거움도 기쁨도 있으니

웃자.


가끔 오늘 이야기처럼 무언가를 잊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기억하기도 하면서

힘들지만 살만한

고달프지만 의미 있는

그리고 고마운 날들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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