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기에
안녕, 어서 와.
오래 기다렸니?
아니, 일찍 와서 책 읽고 있었어.
그러니까 기다린 건 아냐.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아하, 시간을 잘 썼네.
그렇지?
굳이 네가 잘 있었음을 강조하는 말에
빙긋이 웃음이 지어진다.
이래서 나는 네가 좋은가보다.
오늘은 뭘 마시고 싶어?
글쎄? 오늘은 좀 묵직하게 마셔볼까? 말차로 할래. 너는?
나는 홍차가 좋겠다. 맛을 잘 설명할 수는 없는데 얼그레이 홍차가
맛있더라고.
맛있으면 됐지. 그냥 즐겨.
그래 그냥 얼그레이 홍차 좋아하는 일반인 할래.
"쿡쿡쿡" 낮은 네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뭔가 하나를 하면 어느 정도 지식은 있어야 한다는 내 습관이
오히려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을 못하게 만든다는 네 말이 떠올랐다.
맞아 그냥 즐기는 것이 더 나은 순간들도 있는 것 같아.
티테이블의 자개장식이 독특해서 하나하나 문양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 나를 재밌다는 듯 너는 바라보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너는 멀리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차가 나오고 각자의 잔을 들고 향과 맛을 느낀다.
따뜻하고 다정한 이 순간이 좋다.
반짝이며 웃고 있는 너의 얼굴에 잠시 복잡함이 지나간다.
"혹시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니?"
가벼운 나의 물음에 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인에게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한다.
사이좋은 커플이었는데 상대가 바람을 피웠더란다.
지인이 꽤 힘들어하고 있는데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사랑이 거짓이라고
느껴져서 더 힘들다고 하는데
위로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게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참 쉽지가 않다.
아마도 처음 사람에 빠진 순간은 진실되고 그 마음이 강력했을 터였다.
거기에 세월의 무게가 덧씌워지고
여러 경험들이 쌓이면서
그 진실의 순간에 간섭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겠지.
사랑의 순간에 미움의 순간, 허탈의 순간, 분노의 순간, 무의미의 순간이 끼어든다.
그러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하나 보다.
그렇겠지. 사랑이 넘치던 그 순간은 진실이 맞을 거야.
헷갈리는 이유는 아마도 매 순간 계속 그러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마음이 한결같으리라는 착각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일들이 생기고
그러면 흔들리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기에 믿나 보다.
한결같을 수 없고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너무 혼란스러울 거 같아.
무엇을 근거로 믿음을 유지하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기는 너무 어려울 거 같은데.
맞아. 그러네. 그럼 진실이라는 것에는 일정기간 한결같은 태도가 들어가야 하는 거네.
그 기간이 얼마면 우리는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1년? 10년? 30년? 50년?
1년이면 진실이 아니고 50년이면 진실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지.
마음이 바뀌기 전까지는 진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거 같은데
일주일 만에 마음이 바뀌고 또 바뀐다면 진실이라고 느껴지기 어려울듯해.
어느 정도 시간이 부여되고 그동안 마음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건데
그 어느 정도의 시간이라는 것이 통념적으로 정해질 수 있을까?
음...... 글쎄.
어제는 좋았다가 오늘은 싫어지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
몇 달을 사귀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1년 혹은 10년을 사귀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사귀는 기간을 가지고 수치화해서 이 정도면 괜찮다 하기도 모호하지.
너무 자주 상대를 바꾸면 좋게 보이지 않기는 해.
이것도 몇 명까지는 괜찮다 수치화하기 애매하고 말이지.
그런데 연애랑 법률관계로 묶여있는 상황은 또 무게감이 다른 거 같아.
좀 더 엄격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아지는 거지.
어쩌면 그래서 상대를 더 믿고 싶어 지는지도 모르겠다.
무게감이란 말이지.
아마도 그렇겠지.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도 설마 네가 그러겠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연애야 아무리 오래 한다고 해도 둘이 그냥 헤어지면 끝이지만
법률로 맺어진 관계는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훨씬 많고
가족들도 주변인들도 더 신중하기를 요구하지.
사회의 기본 단위가 유지되어야 하니
제도적으로 압박감도 있지.
이렇게 보면 그런 관계에서는 사랑보다 믿음이 더 상위에 있는 거 같기도 하네.
그러면 진실이 더 중요할 수 있을 거 같네.
진실이라... 어렵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상대가 하는 말과 행동에 기대어서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거니까.
말하는 당사자도 자신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잖아?
어느 정도는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할 테니까
그럴 때는 상대의 단점을 부각하려고 하게 되겠지.
자신의 일탈은 정당화될 테고
음... 이 모든 과정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속상하네.
그러게. 우리는 어느 정도는 자기중심적이고 좋은 것만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이런 우리가 지속적인 사랑을 논하는 것이 결이 안 맞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린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애쓰고 있는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
물론 인격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시도를 이어나가야겠지.
지인 분도 혼란이 가라앉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실 거야.
그렇지 않니?
응, 그럴 거야. 옆에서 잘 기다려줘야지.
사람마음이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거 아는데
떠날 마음이면 함께한 상대에게 제대로 이야기는 하고 떠났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면 더 힘든 거 같아.
다가올 때도 떠날 때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조용히 읊조리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자.
힘든 인연일랑 흘려보내고 편해지는 길을 찾는 법도 배워두자.
세상 일은 그 순간에는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기도 해.
흔들리는 이 옆에서 같이 흔들리기보다 단단히 버팀목이 되어주고
내가 흔들릴 때는 또 누군가에 기대어 버텨내 보자.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