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생각하나 13

호랑이 아차

by 한가람

아차가 태어나던 날은 긴 겨울이 끝나고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나는 봄이었습니다.

어미는 산고 끝에 아차와 동생 둘을 더 낳았지요.

아직은 찬 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어미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들을 보아습니다.

아차의 어미는 자신이 훨씬 더 굳건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제부터 홀로 두 해동안 이 아기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다른 암컷에게도 수컷에게도 자신의 영역을 절대 뺏기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설사 아기들의 아비가 온다 해도 영역 안으로 들여놓지 않을 것입니다.


어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아차와 동생들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아차는 동생들과 엎치락뒤치락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나비를 쫓아 폴짝폴짝 뛰는 것도 좋아했지요.

"카앙!"하고 소리치면 들쥐랑 다람쥐들이 자신들의 은신처로 쏙 숨어버리는 것도 즐겼어요.

꼭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세상은 신나고 재밌었고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어요.


새끼들이 무탈하게 잘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몇 번 자신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다른 호랑이들이 있었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맞서서 물러나게 만들었답니다. 어미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어요.

자신의 새끼들도 자신처럼 용맹하고 씩씩하게 자라리라 굳게 믿었지요.


새끼들이 제법 호랑이다워지기 시작했어요.

어미는 슬슬 새끼들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지요.

소리 내지 않고 걷는 법,

유리한 곳에 들키지 않고 매복하는 법,

먹이가 경계하지 않도록 기척을 숨기는 법,

한순간에 제압하고 숨통을 끊어 놓는 법

알려줄 것들이 많았어요.

새끼들이 스스로 사냥을 할 수 있게 교육시켜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미인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었지요.


아차는......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매복을 잘하고 있다가 예쁜 나비가 나타나면

폴짝폴짝 나비를 따라 뛰어올랐죠.

먹이를 노리는 장소를 찾다가 들쥐 굴이 보이면

앞발을 넣고 파바박 흙벽을 쳐서 무너뜨렸죠.

재밌었거든요!

어미가 그러면 안 된다고 조용히 기다렸다가 먹이를 덮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아차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숲에는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먹이를 잡기 위해 가만히 있어야 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어미는 처음엔 부드럽게 타일렀어요.

그러나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차가 장난만 치자 몹시 화가 났어요.


사냥을 장난처럼 대하는 호랑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아차를 혼냈어요.

동생들은 어미가 알려준 대로 규칙을 잘 지켜서 사냥감을 붙잡는 데 성공했어요.

어미는 계속 아차를 다그쳤어요.

다른 형제들은 하는데 왜 너는 못하냐고

네가 잘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망을 시키냐고

나중에는 배고픔은 직접 해결하라며 가족들이 잡은 먹이를 나눠주지도 않았어요.

그렇게라도 하면 아차가 사냥에 진지해지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아차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어요.

소리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는데

왜 나비 같은 것에 한눈을 팔아서 시끄럽게 하고,

잘 숨어서 기다릴 수 있는데도

들쥐 굴에 눈이 가서 굴을 부수고 노느라

자신이 거기 있다는 것을 다 드러내고,

좋은 위치를 찾을 수 있었지만 매번 이렇게

딴짓을 하느라 자신의 위치가 드러나고

사냥감은 도망가버리니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아차가 그러는 사이 동생들의 사냥실력은

점점 좋아졌어요.

작은 동물들도 잡았고 제법 덩치가 있는 동물들을 잡기도 했어요. 어떤 날은 자기들은 필요 없다며

사냥한 동물을 자기에게 던져주기도 했어요.

아차는 느낄 수 있었어요.

동생들이 그러는 것이 자신을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어쩌면 더 이상 자신을 형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죠.

동생들은 아차를 무시하고 있었어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자신이 사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까요.

가족들은 자신이 안 보이는 것처럼 대했어요.

사냥을 나가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왠지 끼어들 수가 없었어요.

아차는 어미에게 미안했고 동생들 보기가 부끄러웠어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서 그런 자신을 혼내기도 했어요. 매번 결심을 하고 애써봤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차는 자기가 너무 싫어졌어요.

자기만 이러니 분명 뭔가 잘 못 된 거 같았지요.

어쩌면 자신은 잘못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이 여기 있어도 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미와 동생들 곁에 있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사냥을 못하는 호랑이라니!

스스로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일은 이제 없었어요.

나비를 쫓는 것도, 작은 동물들에게 소리치는 것도 재밌지 않았어요.

이 넓은 숲에서 자신만 문제인 듯했어요.

다들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아니었어요.

그 누구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하긴, 사냥도 못하는 바보 호랑이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미 없이 사냥을 나갔던

동생들이 완벽하게 사냥에 성공했어요. 그들은 자랑스럽게 먹이를 가지고 왔어요.

어미는 뿌듯한 눈으로 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동생들도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어미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어미와 동생들의 눈 속에 사랑이 가득했어요.

자신은 그 사이에 낄 수 없었어요.

완벽한 가족사이에서 자신은 어울리지 않았어요.


다음날 어미와 동생들이 나간 사이

아차는 동굴밖을 나와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어요.

바위와 나무가 휙휙 지나갔어요.

개울도 건넜어요.

숨이 차오르고 발바닥이 아려왔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어미의 냄새가 희미해져 갔어요.

그래도 계속 달렸어요.

이렇게 달리다가 쓰러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어느덧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어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상관없었어요.

난생처음 와보는 숲이었어요.

나무냄새도 흙냄새도 달랐어요.

숨 쉬는 것이 힘들었고 한 발짝도 떼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았어요.

억지로 한 발을 떼려는데 눈앞이 가물가물해졌어요.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에 나이 들어 보이는 호랑이가 나타난 듯했어요. 다른 호랑이의 영역에 들어왔나 봐요.

아마도 이 호랑이는 자신을 죽일 거예요.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쓰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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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는 눈앞에 쓰러진 어린 호랑이를 보았어요.

꽤 오래 달려왔는지 헐떡이는 모양새가 금방 숨이 넘어갈 듯했어요. 게다가 울면서 달렸는지 눈가가 완전히 젖어있었어요. 아직 독립하기에는 어려 보였는데 필시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었죠.

어려도 호랑이라 누가 덤비지는 않겠지만

지쳐 보이기도 했고 젖은 눈가가 신경이 쓰여 이 어린 호랑이가 깰 때까지 옆에 있어주기로 했어요.


마로는 찬찬히 어린 호랑이를 살폈어요.

털이 윤이 나고 고른 것이 보살핌을 받던 모양새인데

쫓겨난 것인지 제 발로 나온 것인지 숲길을 정처 없이 달려온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원래라면 이 녀석을 쫓아냈겠지만,

예전에 떠나보낸 아들이 생각나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호기심 많던 아들이 멀리까지 나갔다가 곰을 만났고 멋모르고 덤볐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었어요. 숲의 제왕인 호랑이지만 새끼는 그저 새끼일 뿐이었으니까요.

미친 듯이 냄새를 따라가서 복수는 했지만 그런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오랫동안 슬픔에 잠겼죠. 그 이후로 새끼를 가질 수도 없었어요.

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홀로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꼬맹이도 슬픔에 잠겨있는 듯 보여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아차는 힘들게 눈을 떴어요.

목이 말라 버석하게 갈라지는 것 같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어요. 발바닥은 욱신욱신거렸죠.

일단 목을 축여야 할거 같았어요.

억지로 일어나려고 고개를 드는데 눈앞에 나이 든 호랑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차는 순간 멈칫했어요. 쓰러지기 전에 저 호랑이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했던 것도요. 그런데 자신은 살아있었어요.

저 호랑이가 왜 자신을 해치지 않았던 걸까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꼈어요.

왜 날 죽이지 않았어요?

여기는 어디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날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여러 질문이 떠올랐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눈만 멀뚱멀뚱 그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었죠.


나이 든 호랑이의 눈은 맑고 고요했어요.

그 옛날 어미가 아직 자신을 사랑하던 시절에 보았던 어미의 눈빛보다 더 따스하게 느껴졌어요.

어찌 보면 자신을 안타깝게 보는 거 같기도 했어요.

아차가 뭔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그 호랑이는 일어서더니 고갯짓을 한번 하고는 어슬렁 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아차가 머뭇거리자 목마르지 않냐고 묻고는 앞서 걸었어요. 아차는 하고픈 말을 삼키고 따라갔어요.

정말로 목이 타는 것 같았거든요.


나이 든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개울가로 가서 실컷 목을 축이자 살 것 같았어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 호랑이는 고기 한 점을 가져와서는 자기 앞에 툭 떨어뜨려 놓았어요.

아차가 어리둥절해하자 마로는 자기소개를 하고는 배고플 테니 일단 먹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죠.

아차는 낯선 호랑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어미의 말이 생각났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과 먹이를 나눠주는 저 호랑이가 자신을 해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허겁지겁 눈앞의 고기를 먹어치웠어요. 다 먹고 나자 정신이 들면서 아차는 다시 서러워졌어요.

막막하기도 했죠. 오늘은 이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배고픔을 넘겼지만 자신이 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저도 모르게 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마로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호랑이는 친절했어요.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오늘 보고 못 볼 거라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아차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어요.

사냥기술을 배우는데 자꾸만 엉망으로 만들었던 일,

그래서 어미에게 계속 혼났던 일,

그래도 고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것과

동생들이 멋지게 사냥을 성공시킨 일,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었던 것까지 모두 말했어요.


마로는 이따금 그랬냐, 힘들었겠네라고 할 뿐

비난하지도 혼내지도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그리고는 이야기가 다 끝나자 괜찮다면 자신과 함께 지내지 않겠냐고 했어요.

아차는 어리둥절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같이 지내자는 제안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마로는 괜찮다고 말해주었어요.

딴 데 정신이 팔려서 매복이 들키는 거라면 더 많이 시도해 보라고 했죠.

그리고 그렇게 오래 달릴 수 있으면 숲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할 수 있을 테니 될 때까지 해보라고 했어요.

아차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자신이 못할 거라는 생각만 했었죠.

마로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차가 잠깐이라도 가만히 먹이를 기다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어요.

아차가 나비나, 들쥐, 다람쥐, 새들에게 정신이 팔리면 한바탕 신나게 달리도록 했어요.

그리고 몸을 적게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어요.

그러면 소리도 덜 났고 자신의 위치가 들키는 일도 줄일 수 있었어요.


마침내 아차는 '숨어있기'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사냥감도 붙잡았어요!

아차는 믿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 자기 앞에 먹이가 놓여 있었어요.

너무 기뻐서 "크아앙!" 하고 소리쳤어요.

먹이를 물고는 한달음에 마로에게 달려갔지요.


마로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어요.

아차에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한 덕분이라며

끈기를 칭찬했어요.

자신이 끈기가 있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죠.

마로는 아차에게 얼굴을 비비면서

이제 스스로를 믿어보라고 했어요.

아차는 행복했어요. 눈물이 날 것만 같았죠.

마로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했어요.


자신은 여전히 장난도 많이 치고

숲의 여러 일들에 관심도 많고

순간순간 정신이 팔리기도 했지만

뭐 어때요. 사냥을 할 수 있잖아요!

한 번만에 안되면 여러 번 하면 되죠.

아차는 호기심 많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자신이

좋았어요. 매일매일 숲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어다녔어요.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죠.

그래도 괜찮아요.

자신은 이제 사냥을 할 수 있는 늠름한 호랑이니까요!

마로도 그런 자신을 응원해 주었어요.

이제 충분히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에요.

곧 마로와도 헤어져서 자신의 영토를 만들기 위해 떠나야겠지만 두렵지 않았어요.

자신은 장난기 많고 돌아다는 것을 좋아하는 '즐거운 호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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