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
소라게들이 모여 웅성웅성거리고 있습니다.
무리에 제일 큰 소라게가 오늘 껍데기를 바꾸는 날이거든요.
다들 누가 자기보다 큰 소라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나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사용할 소라껍데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덕분에 긴 줄이 만들어졌어요.
제일 큰 소라게가 자신이 찾아둔 소라껍데기를 향해
몸을 움직였어요. 원래 있던 껍질에서 나와 새로 찾은 껍질로
들어가는 거죠. 이때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아주 잠깐이지만 자기를 보호해 줄 껍질이 없어지니까요.
소라게들은 모두 숨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소라껍데기가 비면 얼른 들어가서 자기 몸집이랑 맞는지 확인해야 해요.
너무 크면 움직이기 불편할 테고 너무 작으면 크는데 지장이 있으니까요.
제일 큰 소라게가 찾아 놓은 껍질은 딱 적당해 보였어요.
잘 찾았다며 모두 부러워했죠.
지금도 무리에서 제일 큰데 이제 더 커지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드디어 소라게가 껍데기에서 나왔어요.
이제 새 껍데기로 들어가면 돼요.
그럼 버려진 껍데기로 다른 소라게가 이동하고
그 소라게가 버린 껍데기로 다른 소라게가 이동하고 하면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소라껍데기로 바꾸면 되는 거예요.
다들 새 소라껍데기 속에서 더 크게 자랄 거예요.
그랬는데...........
바닥인 줄 알았던 곳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왔어요!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무리에서 제일 큰 소라게가 사라져 버렸어요.
바닥처럼 변장하고 숨어있던 문어가 긴 팔을 흔들어 소라게를 삼켜버린 것이었어요.
모두 경악했어요. 숨소리도 못 내고 소라껍데기 속으로 숨어서 덜덜 떨고만 있었죠.
문어가 또 공격해오지는 않을까 두려웠답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어요.
모두 껍데기 속에 들어가 있어서 문어가 떠나는 것도 몰랐어요.
더 이상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자 소라게들은 껍데기 밖으로 눈을 내밀고 주위를 살폈어요.
문어는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리에서 제일 큰 소라게도 보이지 않았어요.
모두 충격과 슬픔에 잠겼죠.
소라게가 벗어놓은 예전 껍데기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방금 일어난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듯이 말이죠.
소라게들은 껍데기를 벗고 이동할 수 없었어요.
그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모두 충격 속에 갇혀있었으니까요.
그러다 가까스로 한 마리가 움직이자 다른 소라게들도 움직였어요.
언젠가 껍데기를 바꿔야 하겠지만 오늘은 할 수 없었어요.
무리 중 제일 작았던 소라게는 다른 소라게가 자리를 떠나는 중에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이런 건 처음 봤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다른 소라게가 떠나면서 툭 건드렸어요.
그리고는 "잊어버려. 그래야 해."라고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제일 작은 소라게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마음속에서 '어떻게요?'라는 목소리가 올라올 뿐이었죠.
모두가 떠났기에 제일 작은 소라게도 움직였어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바위틈새로 들어가 버렸죠.
그날 이후로 제일 작은 소라게는 밖에 나가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배가 고파도
심심해도
친구가 그리워도
예전처럼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거나
장난을 치거나
먹이를 구하거나 할 수가 없었어요.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위틈새를 벗어나는 순간,
제일 큰 소라게에게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제일 작은 소라게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친구들이 이따금 찾아왔어요.
누군가는 먹이를 나눠주었고
누군가는 말벗이 되어주었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찾아와 준 것이 정말 정말 고마웠지만
밖에 나가자는 말만 들으면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말았답니다.
결국 화를 낸 것에 후회했지만요.
제일 작은 소라게는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어요.
자꾸만 자꾸만 화나고 슬퍼졌어요.
그래도 시간이 흘러 흘러
소라게는 바위틈에서 아주 잠깐은 나올 수 있었어요.
그동안 잘 먹지도, 껍질을 바꾸지도 못해서
여전히 무리에서 제일 작은 소라게였어요.
그렇게 잠깐 나온 날에는 뭔가 희망이 생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멀리 나가려고 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
.
.
.
.
언젠가부터 소라게는 더 이상 애쓰지 않았어요.
잠깐 바위틈에서 나와서 근처에 있는 먹이를 아주 조금 먹고
그리고는 다시 들어갔어요.
그나마 그곳이 가장 마음 편했거든요.
친구들은 제일 작은 소라게가 걱정이 되었지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가끔 들여다봐주고, 이야기를 나눠주고, 먹이를 나눠주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안쓰럽고 답답했지만 그냥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소라게가 나타났어요.
그 소라게도 어딘가 힘들어 보였어요.
주변을 몹시도 살피면서 자주 몸을 숨기고 이동하고 있었거든요.
무리에서 제일 작은 소라게와 어딘가 닮아 보였어요.
소라게들은 물었어요.
"넌 어디서 왔니?"
낯선 소라게는 자기도 모른다고 답했어요.
자기는 큰 상자 같은 곳에서 살았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큰 물속으로 빠지게 되었다고요.
처음 이 큰 물에 빠졌을 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무척 두려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어찌어찌 살아남았지만
이 큰 물속에는 무서운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소라게들은 생각했어요.
뭔가 마을에서 제일 작은 소라게와 통할 거 같다고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지내겠느냐고 물었어요.
대신 제일 작은 소라게와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부탁했지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해주었어요.
낯선 소라게는 함께 있겠냐는 제안에 고마워했어요.
그리고 제일 작은 소라게 이야기를 듣고는
빨리 만나고 싶어 했어요.
친구들이 낯선 소라게를 데리고 제일 작은 소라게에게 갔어요.
그리고 이제 함께 지내게 된 친구이고
이 소라게도 힘든 일을 겪은 거 같으니 둘이 잘 통할 거 같다는 이야기도 했지요.
제일 작은 소라게는 친구들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낯선 소라게가 겪은 일도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받아들였어요.
낯선 소라게와 제일 작은 소라게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어요.
둘은 울다가 웃다가 탄식하다 다시 울었어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제일 작은 소라게는 세상에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소라게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어요.
낯선 소라게도 자기가 겪은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소라게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둘은 서로를 위로했어요.
둘은 서로를 아꼈어요.
둘은 서로를 알 수 있었어요.
마침내 제일 작은 소라게는 바위틈에서 나와서 낯선 소라게와 이곳저곳을 다녔어요.
낯선 소라게는 어떻게 조심하면 되는지를 알려주었어요.
그건 꽤 유용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주었어요.
혼자라면 못 나왔겠지만 자신과 닮은 낯선 소라게가 있기에
제일 작은 소라게는,
'조심하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나를 돌보며 사는 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고통과 함께 사는 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섭지만 한발 한발 내딛는 법을 배웠어요.
이제 제일 작은 소라게는 더 커질 수 있었어요!
마음에 드는 소라껍데기를 찾아서 몸을 옮겼거든요.
누구의 껍질이었냐고요?
글쎄요......
낯선 소라게가 제일 작은 소라게보다 조금 더 컸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둘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는 이야기도 해드려야겠네요.
그리고 친구들이 많이 안심했다는 이야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