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는 늘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똑같은 일상의 되풀이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은 없다.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우리의 뇌가 같은 거로 받아들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지루함을 불러온다.
별일이 없고 만족감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릴 무렵이면
새로운 자극을 찾아 움직이게 된다.
뭔가 재미와 즐거움과 생기를 줄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도전을 하고 낯선 경험을 즐기고 성취감을 느낄만한 것들을 찾는다.
그렇게 다시 나의 삶 속에 활력을 가지고 들어온다.
우리의 삶이 다채롭고 풍부해지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자극과 낯선 경험을 거부하게 되는 때가 있다.
자신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한없이 자신을 작게 바라보며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려 하는 때 말이다.
'잘 해내야 한다.'와 '실수하면 안 돼'는 그런 때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언어다.
과거 자신이 해내었던 일들은 한순간에 모두 의미 없는 것들이 된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낸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그저 '누군가가 잘 봐줘서' 혹은 '누군가가 도와줬으니까' 혹은 '운이 좋았으니까'라는 말들로
한없이 자신을 무력하게 만든다.
나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고 내가 하면 망쳐버릴 것만 같은 이 느낌은
그 순간 나를 점령하고 열린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멈추게 만든다.
온갖 이유를 가져와 할 수 없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낸다.
자신을 설득하고 타인을 설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안 하길 잘했어. 일이 잘못되었으면 어쩔뻔했어. 안전한 게 최고야."
'경험'에서 물러나서 '똑같은 삶'에 자리 잡는다.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안정 지향적인 것에 대해 당당할 수 있고, 만족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 차제로도 충분하다. 세상에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내는 사람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만약 이러한 전개가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도하기에는 두렵고 놓치기에는 아까운 그 마음이 우리를 양쪽으로 잡아당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어진다.
그리고는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리거나
자기 비난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기회를 잡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왜 두려웠을까?
그것이 나의 삶에 필요한 것임을 알면서도 왜 순간 얼어붙어 버렸을까?
자신에게 물어보자
과거 실패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는지,
있다면 그 아픔은 얼마나 큰지,
혹은 기질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편인지,
세 가지 모두 "예"라는 답이 나온다면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한마디만 해보자.
"너라서 그만큼이라도 해낸 거야."
당장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매일매일 자신에게 인정과 격려의 말을 해주자.
어쩌면 마음속 파수꾼이 격렬히 저항할지도 모른다.
자기 비난에 이미 익숙해져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치 그것이 사실이고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가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비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냥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일 뿐이다.
여기까지 동의가 된다면
가차 없고 무자비한 마음의 파수꾼에게 반기를 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처음 하는 일을 숙련된 사람이 하듯 잘 해낼 수는 없다.
개인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기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나보다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고 있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공의 순간도 있고 실패의 순간도 있다.
성공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정말 나의 힘만으로 성공했는지 말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끊임없이 비용이 들어간다거나, 많은 시간을 간호에 써야 하거나,
부모님이 이혼을 준비중이시거나, 소중한 친구가 떠나갔거나, 반려동물이 떠나갔거나,
전학, 이사로 삶의 터전이 바뀌어 적응을 해야 하거나,
대출조건이 갑자기 바뀌거나, 혹은 임대료가 올라서, 대학교가 폐교하거나, 군부대가 이전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도로가 새로 나서 상권이 바뀌거나
이런 환경조건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의 순간은 개인의 준비와 상황적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일어난다.
상황적 조건이 맞아떨어질지 아닐지 미래를 알 수는 없다.
좋은 결과만 골라서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패가 많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올라간다.
왜냐고?
그만큼 경험이 많으니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결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될지에 대한 안목도 같이 길러지니까.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
꼭 성공해야 한다고 기대치를 높이지 말자.
처음엔 그냥 해보는 거다.
자신에게 성공의 데이터이든 실패의 데이터이든 별로 감명을 주는 경험이 아니라면
다음에는 그 경험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목록을 줄여나가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두려울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도록 진화해 왔다.
현대사회에서 실패란 생존의 위협요소이므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니 두려워하는 자신을 나무라지 말자.
그저 그 마음을 안아주자. 토닥여주자.
그리고 기다려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 내디디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해보는 거다.
딱 한 발이다.
한 번에 딱 한 발씩만 나아가보자.
현실적인 부분도 중요하니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라면
기회를 잡아보자.
그리고 계획을 세우자.
충분한 정보를 모으고 그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경험을 듣자.
이때도 실패의 경험을 듣는 것이 우리의 성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앞에 있을지 모르는 우리에게 경험자의 실패경험은 훌륭한 조언이다.
실패했다는 경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의 요소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떤 방식으로 했었는지
그것이 우리가 들어야 할 실패경험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주자
"꼭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매 순간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