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by 한가람

쉬는 날이다.

더 자도 됨을 허락받은 날이지만 이불의 끌어당김을 뒤로하고 잠자리를 빠져나왔다.

전날 저녁 설거지해 둔 그릇들을 챙겨 넣고 출근하는 남편을 위한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한다.

전날의 빨래를 걷어 곱게 개어두고 세탁기를 돌린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나를 여유롭게 만든다.

재료를 손질해서 국을 끓이고 반찬 몇 가지를 만든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아직 기척이 없다.

집이라는 공간 속에 혼자인 듯 나에게 집중된다.


그사이 간단히 요기를 끝낸 남편은 출근하고

음식을 만든 흔적으로 가득한 싱크대를 비워낸다.

개운하다.

오랜만에 지인에게 연락을 해본다

시간 되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말이다.

먹거리를 준비해 놓았으니 내가 자리를 비워도 알아서 끼니를 챙길 것이다.

어릴 때는 아이들만 두고 잠깐 동네슈퍼를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몇 시간 자리를 비우는 것도, 늦게 들어오는 것도 수월하다.

힘든 시간을 견뎌낸 보상인지, 시간이 만들어 준 마법인지 몰라도 그저 고맙다.

자라주어 고맙고 견뎌내어 고맙다.


아이들에게 나간다고 알리고 집을 나선다.

겨울바람이 시원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변함없는 그 모습이 좋다.

새롭게 적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준다.

익숙한 모습 속에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진다.

긴 시간 이어져온 인연에 각자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근황을 물어본다.

크게 아픈 곳이 없음에 서로 격려하고 안도한다.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다.

더 오래 함께 있고 싶기도 하지만 또 보면 되는 것이니 지금의 아쉬움을 저축해 둔다.

다음에 만날 때 반가움으로 보상받을 터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노곤하다.

잠시 눈을 붙인다. 아침에 부산스럽게 움직였더니 피로가 몰려오나 보다.

눈뜨니 40분이 지나있다.

제법 잔 것 같은데 시간이 남아있다.

바쁘게 해야 할 것은 없다.

느긋하게 식탁을 차리고 함께 먹을 사람을 불렀다.

둘은 나중에 한 명은 지금 먹는 단다.

나란히 앉아 주섬주섬 반찬을 집어 먹는다.

서로 별 말은 없다. 이런 때도 있는 거지.

가끔은 이렇게 고요한 것도 좋다.

밥 먹는다는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되니까.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다시 집을 나선다.

공기는 여전히 시원하다.


시간을 여유롭게 대할 수 있는 날이라 좋다.

하루를 내가 계획한 대로 보낼 수 있어 자유를 느낀다.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어 지치지 않아도 된다.

쉬는 날의 좋은 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잘 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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