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에서 친숙한 이로

by 한가람

출근길 정류장에서 늘 만나게 되는 분이 있다.

같은 시간에 정류장에 나와서 같은 버스를 타신다.

가볍게 눈인사정도를 나눌 뿐 그 이상 가까워질 일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가 일어났다.


어제 일이다. 어쩌다 보니 평소보다 3분 정도 늦게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버스정류장 가기 전에 제법 신호가 긴 횡단보도가 있어서 혹시나 신호를 기다리다 버스가 지나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뛰다시피 걸었다.

버스로 출퇴근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 버스를 놓치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지각확정이라 부지런히 움직여서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니 그분도 신호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고 나는 (그쪽이) 안 보여서 (버스가) 먼저 간 줄 알았네."

"제가 오늘 조금 늦게 나왔네요." 하고 말을 이어받았다.

그분 역시 오늘 몇 분 늦게 나왔다고 하셨다.

가끔 승객이 없어서 정류장을 그냥 통과하고 버스가 일찍 가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존재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동안 낯선 이었을 뿐인데 지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

'제시간에 출근하기'라는 공통된 목표를 통해 '우리'가 되었고 짧은 순간 서로를 지지해 주는 관계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느슨한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 내는 이런 소소한 경험들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다니 말이다.

평소에는 각자로 존재하다가 필요한 순간 협력하여 함께 헤쳐나가는 경험은 크든 작든 우리가 공동체 속에 있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이렇게 느슨하면서도 협력가능한 관계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형성된다면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당황스러운 순간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며 견뎌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상상해 보자.

사회를 만든 순간부터 우리는 함께이다.


오늘 그분이 안보이신다. 근무일이 아니실 수도 있는데 어디 편찮으신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자주 보면 친숙해지고 공유하는 경험이 있으면 친밀감이 느껴지게 된다.

지금 잘 아는 사람도 처음엔 낯선 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친밀한 지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낯선이 들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상호성의 원리로 대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의 삶에 나의 삶에 무엇이 찾아오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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