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속에서 온전히 경험하기
처음 올라가 보는 산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산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도 준비하고 물도 준비하고 수건도 준비한다.
혹시나 해서 상비약도 챙겨간다.
제법 준비를 잘한 것 같다.
자 이제 출발이다.
넓은 입구와 완만한 경사는
마치 '충분히 오를 수 있어.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숲내음, 새소리, 바람을 느끼며 즐겁게 산을 오른다.
완만한 구간이 지나고
경사진 구간이 나타났다.
땅에 박힌 돌부리와 나무뿌리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속도를 내기 어렵다.
숨도 차고 덥고 몸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낸다.
같이 산을 올랐는데
가뿐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뒤처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똑같이 속도를 낼 수는 없다.
그랬다간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리라는 느낌이 든다.
저들은 산을 많이 올라봤거나
체력이 좋은 거겠지.
약간의 씁쓸함을 뒤로 남기고
산행을 지속한다.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있다.
경사도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잠시 갈등이 인다.
경사가 있지만 짧은 거리를 택할 것인가,
경사가 완만하지만 보다 긴 거리를 택할 것인가?
잠시 멈춰 서서 땀도 식히고
현재 몸상태를 점검해 본다.
산은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내려오기도 해야 한다.
내려올 체력까지 계산에 넣어본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택하면
정상에서 못 내려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짝 아쉽지만 경사가 완만한 길을 택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그게 뭐 대순가?
그만큼 산의 정취를 더 느낄 수 있으니
좋은 거다.
계속 산을 오른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들었고
이정표도 있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나'이다.
다리의 무거움도
숨이 차오르는 괴로움도
연신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이 따가운 것도
내가 경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상쾌한 공기를 느끼고
초록의 잎사귀들을 보면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에 자연의 음악을 느끼는 것 또한
내가 경험하는 일이다.
이 산을 오르기로 결정을 내린 것도' 나'이고
산이 주는 수많은 감각 속에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도 '나'이다.
수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해낼 것도 아니다.
고달프다 느끼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나는 정상을 향해 계속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올라간다.
내려오는 분들을 만난다.
고맙게도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기운을 북돋아주신다.
진짜 정상이 얼마 안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그들도 오르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있었으나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니 할만하다 싶은 게다.
그래서 그들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노라고 말이다.
지금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정상을 오를 수 있다고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성취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믿기로 한다.
알고 있다 정상까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또 알고 있다.
처음부터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면
아득해져서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얼마 안 남았어요."라는 말에 기대어
한 번에 한 걸음씩 그저 발을 옮긴다.
작은 걸음이지만 내가 멈추지 않으면 될 일이다.
산행은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을 향해 나가는 과정 전체가 목표이다.
그렇지 않은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면 헬기를 타고 가면 된다.
같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한발 한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이뤄낸 것과
무언가의 도움으로 과정을 생략한 채 목적지에 도달만 한 것이 같을 수는 없겠지.
경험이 다르니 얻는 것도 다를 게다.
나는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서 얻어낸 것이 좋다.
과정전체를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 좋다.
매 순간의 경험들이 나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한발 한발 길 위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