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잡은 손

by 한가람

퇴근길 환승정류자은 인근의 대도시를 오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늘 한대 정도는 와서 선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시외버스가 와서 섰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다들 바쁜 걸음으로 서둘러 내려서 갈길을 가는데 그 흐름과 다른 느린 발걸음이 눈에 띄었다. 천천히 조심조심 내딛는 걸음. 고개를 들어보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내리고 계셨다.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출입문을 향해 몸을 돌리셨다. 배우자인 듯 보이는 분이 그분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내려오셨다. 어르신은 배우자를 부축하려는 듯 내려오는 상대를 향해 손을 뻗으셨다.


곧 힘겨워보이는 발걸음 보다 더 힘겨워보이는 얼굴을 하신 분이 내리셨다.

'어디 병원에라도 다녀오시는 걸까?'

느리게 내딛는 발걸음을 보며 안타까움이 일었다. '건강하시면 좋을 텐데.'

어르신은 땅에 발을 디딘 아내의 손을 부축하듯 꼭 쥐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고 기력 없어 보이는 발걸음에도 맞잡은 손만큼은 굳건해 보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분명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주고 계실 터였다.

부디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빌어보았다.


연이어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이 내리셨다. 어디 예식에라도 다녀오시는 길인지 프록코트에 머플러로 멋을 내셨고 자세도 꼿꼿하셨다. 이분 또한 내려서 몸을 돌리시고 뒤따라 내려오는 아내의 손을 붙잡아주셨다.

아내분도 정장차림이셨는데 내려오시다가 구두가 미끄러졌는지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남편에게로 세게 부딪혔다. 제법 아픈 표정을 지으셨는데 남편도 아내도 "거 좀 잘 봐야지!"라거나, "잘 좀 잡아주지."라며 서로를 탓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잠시 서로 괜찮은지 살피고는 갈 길을 가셨다. 꼭 마주 잡은 손에 유달리 시선이 갔다.


사람은 좋을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 본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본인도 불편한데 더 불편한 배우자를 챙기는 모습이나 배우자의 실수에 너그럽게 반응하는 모습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을 아닐 터이다. 함께 맞이하는 노후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노쇠해 가는 몸을 다독이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활동성이 줄어들고 피곤이 쌓여 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처럼 은퇴의 시기도 그렇게 오리라.

그때가 오면 잘 해냈던 일 아쉬웠던 일 모두 흘려보내고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들과 젊은 시절 할 일에 치여서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을 관조하며 매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옹다옹하지 않고 너그럽고 지혜롭게 웃으며 해 질 녘의 찬란하고 오묘한 빛처럼 주위를 넉넉하게 품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맞잡은 두 손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람 인 한자의 생김새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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