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날씨가 좋으면 독서를 하지 않는다
예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만들어냈는지. 사람들은 날씨가 좋을 때 독서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넘치도록 많은 봄과 가을엔 자연스레 사람들이 책과 멀어진다. 꽃놀이와 단풍구경은 필수고,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밖으로 나가려 한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나 같아도 책 보러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한 습기와 기온,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그저 밖에 서 있기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데 굳이 실내에 갇혀있을 이유가 없다.
정기 휴일이 있었을 땐, 봄과 가을에 돗자리를 들고 공원에 가서 책을 읽기도 했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구매해 나무 그늘아래에 앉아 누워 책을 펼쳐 책을 읽는 낭만을 느껴보려고. 하지만 이 시기의 공원은 독서하기에는 최악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원을 이용하기 위해 모여들어 시끄러운 것은 물론이고 날벌레와 꽃가루로 인해 음식을 펼쳐놓지도 못한다. 낭만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지금의 나는 날씨가 좋을 때 휴가를 간다. 봄과 가을엔 책을 찾는 사람도, 추위와 더위로부터 피하기 위해 카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줄어드는 시기다. 회사를 다닐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회사는 냉난방 복지를 누리며 일하고 싶은 한 여름과 한 겨울에 휴가를 주고, 정작 마음이 떠나 일하기 싫을 정도로 좋은 계절에 일감을 몰아주니까.
휴가가 짧다 보니 주로 해외를 나가면 일본에 가는 편인데, 한국 사람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카페나 여러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본다. 심지어 영어권의 외국인들은 그 좋은 날씨에 카페테라스에 앉아 독서를 한다. 해외까지 왔는데 책이나 읽고 있냐고 구박받기 딱 좋은 장면들이 많은 곳에서 보였다. '뽕을 뽑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자국에서도 할 수 있는 독서로 시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정작 한국에선 카페에 앉아 독서하면 온갖 눈치를 주며 도서관으로 쫓아내려고 악을 쓰면서, 해외의 카페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정말로 자국에서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인가 의문이 드는 건 나뿐일까.
나 같은 독서가에게도 좋은 날씨는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야외활동을 즐긴다는 건 아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실내를 선호한다. 테라스가 있는 식당이나 카페, 야외 벤치가 있는 도서관 같은 곳. 혹은 책방을 찾아 떠난다. 이 시기의 동네 책방은 내가 운영하는 북카페와 다를 것 없이 조용하다. 아니, 책방은 원래 조용한 곳인가. 아무튼 이 시기에 주로 찾아다니다 보니 내 기억 속에 남은 책방의 이미지는 이 시기엔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책방을 방문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밝히는 편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들은 대체로 나를 반겨주었다. 인사를 받아주는 것은 물론 동종 업계에서 느낄 수 있는 고충과 공감대를 공유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 대가라고 하긴 뭣하지만 늘 들린 곳에서 책을 구매한다. 책방 주인은 "당신 책방에서 주문하면 훨씬 저렴할 텐데 왜 여기서 사요."라고 핀잔을 놓는다. 여기에 와서 내가 모르던 책을 많이 알게 되었고 추천까지 받았는데 어떻게 인터넷으로 냉큼 주문해 버릴 수가 있겠는가.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을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그렇게 책을 고르고, 책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하루가 저문다. 책방에서 책도 좀 읽을 거라고 마음먹었던 것은 잊힌 지 오래다.
봄과 가을엔 즐길거리, 볼거리가 많아 책을 읽지 않게 된다는 얘길 했었는데, 실제론 계절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봄과 가을엔 '덜 읽는' 게 아니라 '더 안 읽는' 것일 뿐. 책 한 장 제대로 안 넘겨 보는 사람들이나 가을만 되면 독서의 계절이라고 소리친다. 독서를 하기에 적절한 계절은 없다. 읽고자 하는 마음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