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숨겨진 책 관찰 - 자연에 이름 붙이기(5)
평소 과학 서적을 좋아한다. 한 때는 그 분야만 집중적으로 읽을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출시되기 전까지 괜찮은 과학 서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도서 분야도 꽤 굵직한 흐름이 있는데 과학서의 경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면서 이 만한 베스트셀러가 몇 년째 나오지 않던 때였다. 물론 나의 편협한 시선으로 인해 그 사이 출간된 과학 서적들을 재미가 없을 것이다고 여기고 안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나, 서점이나 출판계의 흐름으로 봤을 땐 과학 서적이 점차 하향세인 건 분명했다.
여러 분야의 책들이 긴 텀을 두고 유행을 선도했다. 문명이나 세계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경제서적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미술사가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과학서가 차츰 잊혀 갈 때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 책은 메가 히트를 쳤다. 다양한 방면의 독서가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면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놓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매력적인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의 전기(傳記) 같은 이야기 구성, 거대한 반전까지, 아무런 정보 없이 읽으면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짜인 과학서였다. 게다가 등장인물과 성장배경뿐 아니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과학 이론들은 독서모임에도 아주 적합했다.
도서관에서는 대출이 힘들 정도로 줄을 섰고, 책방에서도 꽤 잘 나가는 책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독서모임 멤버에 한해 책을 대여해 주는 시스템이 있는데, 책장에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돌아가며 대여를 해가셨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책의 후반부에 저자인 '룰루 밀러'에게 큰 영감을 준 책이 소개되는데 그 책이 바로 <자연에 이름 붙이기>다.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사람들이 이 책 또한 번역되기를 고대했고, 그 성원에 힘입어 번역이 쉽지 않았을 책임에도 불구하고 꽤 빠르게 출간되었다. 출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를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추천책으로 소개 영상을 올렸고, 전(前) 대통령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까지 되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이어 과학 분야 유행의 두 번째 거대한 바람이 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며칠 만에 시들해졌다. 이 책은 대박은커녕 수면 위로 제대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가라앉았다.
나 역시 출간 즉시 구매해서 읽었는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잃어버린 우리의 '물고기'를 되찾는 여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물론 그것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아주 극히 일부지만, 저자 '캐럴 계숙 윤'이 프롤로그에서 '우선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는 한 마디에 흥미가 솟구쳐 오르고 가슴이 웅장해진 건 나밖에 없었으려나. 물고기를 포함하여 이미 분류학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존재들에 대해 어떻게 한 인간이 그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한 것일까.
나는 이 책을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추천했다. 독서모임에서도 몇 달에 걸쳐 소개와 추천을 했고,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를 구매하는 독자분들께도 그 책을 재밌게 읽게 되신다면 이 책도 꼭 읽어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이 책을 기피했다. 책 소개를 읽으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과 문과를 나와 과학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는 건 부담스럽다는 말이 많았다. 재밌게 읽은 내가 그렇지 않다고 열심히 옹호해 봤지만 그들에게 와닿진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책의 본질적인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었는데 표지가 이상하다거나 제목이 읽기 싫게 만든다는 거였다. 그런 이유라면 감안하고서라도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이 떠난 지 오래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핑계고 그저 이 책이 읽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책의 내용 전반은 분류학의 역사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분류를 해왔던 시기부터 체계적(이라 믿었던) 분류학의 시작, 과학적 근거는 부실하지만 과학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안간힘, 객관화에 온갖 노력을 쏟지만 결국 주관의 영역에 들어가고 마는 종의 경계, 과학의 영역에 들어섬과 동시에 오히려 개인에게서는 점차 멀어지는 아이러니, 개인과 멀어진 분류학이 불러온 사태까지 분류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한 고군분투와 그 고군분투 끝에 차지한 자리의 씁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는 한 편의 대 서사시를 담은 영화 같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들에 추억의 감정들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철학자로만 알았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 교과서에서 봤던 린나이우스(이하 린네),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 본 다윈, 과학 책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하는 마이어, 그리고 점차 과학에 가까워지도록 만든 수많은 분류학자들. 인간의 본능에 의존한 원시적 분류학에서 한 단계씩 창발(創發)이 일어날 때마다 놀랍도록 강렬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하나의 이론이 등장하면 나는 충분히 설득당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더욱 견고한 이론이 나올 때마다 나는 설득당하기를 반복했다.
분류학의 가장 큰 고비는 인간 인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를 '움벨트'라 불렀다. 간단히 설명하면 본능적으로 지각된 세계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것들을 분류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과 저것이 유사하면 하나의 범주에 넣고, 이것과 저것이 다르면 각각의 범주에 넣는다. 실제로 그것들이 가진 본질이 유사한지 다른지는 모른다. 우리의 움벨트는 순간적이고 본능적으로 분류할 뿐이다. 이 본능을 벗어나 세계를 분류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본능을 벗어난 분류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어떤 생명체를 다른 생명체와 같은 종(種), 같은 과(科), 같은 강(綱), 같은 계(界)로 정확히 분류하는 기준을 잡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움벨트는 각 개인이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분류를 진행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개인이 존재하는 만큼 분류의 종류가 발생해 버린다.
그렇기에 분류학자들은 분류학이 과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게끔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은 완전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문제는 분류학이 아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되면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효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학명(學名)으로 불리는 것에 우리는 깊은 공감을 느끼지 못한다. 호주 산불의 피해로 코알라들이 많이 죽었다는 말에는 감정적 이입이 되지만, Phascolarctos cinereus라고 칭하는 순간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개체 죽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물고기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렸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분류라는 것은 다른 과학적 학문과는 다르게 과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한해서만 분류학이 학문으로써 기능을 하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움벨트를 이용해 분류를 해도 된다. 그것은 우리를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내가 무언가를 분류한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고 그 관심은 자연의 실태를 직시하게 만들어준다.
수많은 것들이 자리를 잃고 사라진 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